시중은행들이 후순위채권 발행을 늘리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발행한 규모만 해도 지난해 발행물량의 85%에 이른다.
만기가 돌아오는 후순위채를 차환하기 위함이지만 최근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가 뚝 떨어진데다 내년부터 시행될 바젤Ⅲ 이전에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포석이 짙다. 바젤Ⅲ가 이행되면 후순위채와 같은 보완자본(Tier2)은 자본으로 인정받기 어려워지고 보통주나 사내유보금과 같은 기본자본(Tier1)을 높여야 한다.
다만 올해까지 발행된 후순위채와 같은 보완자본은 자본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발행금리도 크게 떨어진 만큼 은행으로서는 후순위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만기도래 물량이 많다=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은행들은 후순위채 발행을 늘렸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늘리기 위해 당시 발행한 후순위채 규모는 13조2,000억원에 이른다. 그렇다 보니 2014년까지 후순위채의 만기도래 물량은 16조원이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이 지난해부터 2014년까지 총 6조4,000억원의 후순위채 만기가 도래하며 신한은행 2조9,000억원, 우리은행 2조7,000억원, 농협 2조4,000억원, 하나은행 2조3,000억원 등이다.
후순위채의 만기가 속속 도래하자 은행권은 그간 차환을 할지 아니면 상환할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해왔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상환의 부담이 커서 결국 후순위채를 추가로 발행해 차환하는 쪽으로 대부분 은행들이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에 맞춰 은행들도 후순위채 발행을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시중은행들은 모두 4조6,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에 성공했다. 지난해 전체 발행규모(5조4,000억원)의 85%에 이른다.
예컨대 신한은행은 3ㆍ5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조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고 국민은행은 7,000억원, 하나·농협·우리·중소기업은행도 3월과 4월에 3,000억~8,000억원 규모를 시장에 팔았다.
◇2008년에 비해 뚝 떨어진 발행금리=후순위채의 발행금리가 낮은 것도 발행을 늘리는 이유다. 2008년의 경우 10년물 기준 후순위채의 발행금리는 7~8%대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발행금리가 4%초반대로 떨어졌다. 국민은행이 발행한 7,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금리는 4.35% 수준이었고 신한은행의 발행금리도 4% 초반이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국고 10년물 금리가 3.8% 안팎으로 거의 최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발행자 입장에서는 낮은 금리(높은 가격)로 후순위채를 발행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후순위채 자본인정은 올해 뿐"…바젤Ⅲ 이전에 자본확충=2013년부터 2019년까지 각국 금융기관이 단계적으로 충족해야 할 자기자본비율의 기준에 관한 협정인 바젤Ⅲ도 은행권에는 부담이다. 바젤Ⅲ가 시행되면 은행들은 위험자산 대비 보통주 자본비율을 2%에서 4.5%로 높여야 한다. 올해까지 발행된 후순위채권은 보완자본으로 인정받지만 내년부터는 인정받기 힘들어진다. BIS비율이 충분하지만 은행으로서는 더 높여 놓은 게 유리하다. 바젤Ⅲ가 시행된 후에는 보완자본을 인정받으려면 우발적 전환사채(코코본드ㆍCOnvertible COntigent Bonds)를 발행해야 한다. 평소에는 채권이지만 유사시 주식으로 전환돼 기본자본 증가 효과가 있는 코코본드는 조달비용이 후순위채보다 2배가량 높다. 은행들이 후순위채 발행을 올해 더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자금부장은 "내년부터는 후순위채가 보완자본으로 인정받기 위해 어떤 조건이 붙을지 모른다"면서 "현재 은행들의 BIS비율은 충분히 높아 걱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바젤Ⅲ에 대응하기 위해 후순위채 발행을 늘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