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저가입찰제론 하도급 횡포 차단 못해

정부가 건설 분야 경제민주화 방안으로 하도급 횡포 근절대책을 내놓았다. 하도급대금직불제를 비롯해 무려 21개 정책과제를 추진일정과 함께 제시했다. 가히 종합선물세트 수준이다. 약탈적 갑을 관계를 바로잡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한다.

이번 대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불공정한 하도급계약의 무효화다. 설계변경이나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비 상승을 계약내용에 반영하지 않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하는 불공정 계약은 효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과거의 단편적인 대책에 비한다면 진일보한 접근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개선이 수많은 건설현장에서 제대로 먹힐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아무리 이행실태를 겹겹이 점검하겠다고 해도 수직적ㆍ다단계 생산구조인 건설업의 속성상 음성적 관행까지는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감을 유지하고 공사를 계속 따내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불공정한 계약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하도급 횡포는 공사를 저가에 수주하거나 건설경기가 나쁠수록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적자공사를 유도하는 최저가입찰제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이런 구조적 병폐를 차단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적용이윤이 보장돼야 일정 수준의 공사품질이 확보되고 원청ㆍ하청 업체의 건전한 공생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최저가입찰제도는 기술경쟁을 유도해 공사원가를 절감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2001년 부활돼 현재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적용되고 있다. 금액을 가장 낮게 써내면 낙찰되는 이 제도는 일견 공정하고 합리적인 입찰제도로 보이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건설업체 난립과 덤핑 입찰, 건설업계 경영난 같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말았다. 내년에는 1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원청ㆍ하청 업체 불문하고 걱정이 태산 같다.

때마침 국회에서 최저가입찰제 폐지를 골자로 한 국가계약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된 상태다. 발주처인 정부가 건설업체를 쥐어짜는 입찰제도를 유지하는 한 그런 구조는 아래 단계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 건설 분야의 공정한 갑을 관계 형성은 입찰제도 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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