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여건은 좋다. 핵심은 국내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다. 수출은 계속 경제를 이끌 것이며 설비투자도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소비는 여전히 빛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내년도 우리 경제의 전망이다. 우선 올해 여건과 크게 변하지 않는 한 성장을 5%대로 올해보다 크게 좋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경제의 완연한 회복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가 내년에도 여전히 무거운 짐으로 남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17대 총선을 전후로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카드채문제가 다시 불거져 금융시장을 다시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등 불확실한 국내 요인들이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ㆍ노사안정되면 5%대 성장 가능=한은은 내년 우리 경제가 상반기에 4.8%, 하반기에 5.6% 성장해 연간 5.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 5%대 성장을 전망한 국내 연구기관은
▲금융연구원(5.8%)
▲산업연구원(5.5%)
▲LG경제연구원(5.1%) 등 3곳. 대외여건 개선에 비해 내수 부문의 성장여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4%대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더 우세했지만 수출이 예상보다 좋아지면서 최근 들어선 5% 성장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주열 한은 조사국장은 “내년 성장률을 5.2%로 전망한 것은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이 올해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에 따른 것”이라며 “금융ㆍ노동 부문이 올해보다 나아질 경우 6%에 가까운 성장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제회복세가 본격화 되고 중국의 고성장이 지속되면서 내년 경제성장을 책임질 수출이 11.6%의 높은 증가율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국장은 “올해 전망치인 19.1%보다 증가율은 낮지만 올해 큰 폭으로 증가한 데 따른 반사효과를 감안하면 수출 호조세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비투자 살아나지만 소비부진은 여전=수출이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공장가동률이 높아짐에 따라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설비투자도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예상됐다. 설비투자는 내년에 6.5% 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한은은 세제지원 등 투자확대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기업이 상당한 여유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투자회복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민간소비는 올해의 감소세에선 벗어나겠지만 연간 3.2% 증가하는 데 그쳐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저조한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은은 가계의 과잉부채 문제와 이로 인해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에 대해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 민간연구소들이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을 2%대로 예상하는 부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가는 올해보다 더 떨어질 전망이다. 주택가격이 진정세를 보이면서 연평균 2.9%로 올해(3.6%)보다 더 낮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내년 하반기 담뱃값이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3.1%상승할 것으로 나타났다.
◇불확실성제거가 성장의 관건=내년 해외여건은 우리 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 한은 역시 내년 경기전망에 `정치적ㆍ사회적 불안요인이 올해보다 악화되지 않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우려감을 표시했다.
올해는 이라크전쟁, 사스(SARS), 북핵문제, SK글로벌 사태, 잦은 강우 등 예상치 못한 악재가 유난히 많았지만 내년에도 북핵문제, 가계부실 후유증 등은 계속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내년 초 17대 총선으로 인해 경제정책에 혼선이 나타나고 이해집단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높다. 카드사의 경영 불안과 달러화 약세 기조로 금융시장 불안이 그치지 않고 가계부채와 청년실업은 서민층의 부담으로 남을 전망이다.
민간연구소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정치일정을 의식해 경기침체 탈피해 주력하면서 일부 정책혼선이 나타날 수 있다”며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다가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계속 지연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