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저녁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 4~8층 형사 1~9부. 시계바늘이 9시를 향해 가는데도 대부분의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사건기록을 검토하는 검사 옆에서 참여계장이 고소ㆍ고발인 등으로부터 조서를 받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열심히 자기 입장을 설명하거나 해명하는 것을 넘어 궤변을 늘어놓다가 호통을 맞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띈다. 구치소에서부터 포승줄에 묶여 와 조사 받는 구속자들의 모습은 여기가 검찰청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이처럼 서울지검에는 경기불황의 장기화에 따라 개인과 기업들이 동업이나 투자, 채권ㆍ채무 관계에서 비롯된 사기나 횡령, 배임 등을 이유로 고소ㆍ고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증시침체를 틈타 활개를 치고 있는 주가조작 꾼들이나 몇 달씩 고의로 임금을 주지 않는 악덕사업주를 처벌해달라는 건도 늘었다. 여기에 신용불량 고객들의 증가로 몸살을 앓는 카드사들이나 고리를 빌려주고 돈을 받지 못한 사채업자들의 고소ㆍ고발도 급증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40여건의 민사소송과 50여건의 형사고소를 제기, 33명에 피해를 끼치며 그 중 1명을 자살까지 이르게 한 소송사기꾼 김모(46ㆍ여)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김씨는 1억원짜리 허위낙찰계를 만든 뒤 작년부터 올 4월까지 40여명을 상대로 계금청구소송을 내 법원에서 2번이나 승소하기도 했으며, 피해자들의 고소에 대해 역으로 허위 고소장이나 진정서를 제출하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서울지검의 형사부(부부장검사 등 수사검사는 평균 5명)는 검사 개인 당 매일 1건 이상씩의 고소ㆍ고발 사건이 부여되는 등 업무폭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교일 형사7부장은 “검사들이 대부분 사건을 경찰로 내려보내 지휘를 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하고 있지만 보통 10시까지 야근을 해도 고소ㆍ고발건을 다 소화하지 못할 정도”라며 “민사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검찰로 가져와 법원에 대한 입증자료로 쓰는 경향도 농후하다”고 말했다. 실제 대검찰청이 올들어 지난 8월까지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고소ㆍ고발사건을 취합한 결과 40만 1,660건(52만 9,17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나 늘어났다. 또한 민사소송(대법원 집계)도 올들어 지난 6월까지 54만 7,343건으로 작년 동기보다 16%나 증가했다. 이처럼 고소ㆍ고발이 난무하다 보니 수사결과 기소까지 연결되는 경우는 겨우 10% 정도에 불과, 결과적으로 검찰과 경찰의 수사력이 낭비되고 있다. 더욱이 주가조작 등 증권 범죄의 경우 2001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금감원이 검찰에 265건을 고발 또는 수사의뢰(291명 기소) 했지만 실형 선고는 23명(9.4%)에 그친 것으로 최근 대법원 국감 결과 밝혀졌다. 문성우 서울지검 2차장은 “사기ㆍ배임ㆍ횡령 등의 고소ㆍ고발건이 급증하면서 수사기관의 업무도 크게 늘었다”며 “각 부에 미제사건을 포함해 신속히 사건을 처리하라고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광본기자 kbg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