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고위공직자들 사이에는 낙하산뿐만 아니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반칙성 재취업이 판을 치고 있다. '업무 연관성'이라는 재취업 심사기준이 모호하고 심사과정도 불투명한 제도적 맹점을 너무나 잘 아는 고위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왜곡해서 법규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5일 정부당국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취업 심사를 통과한 고위직 공무원은 1,263명으로 나타났다.
2011년 7월 정부가 4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재취업시 퇴직 전 업무 연관성 적용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회계법인 등을 추가하는 등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했지만 이들은 모두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을 통과했다.
최근 이직은 감사원이 두드러진다. 감사원은 제2사무처장이 삼성생명 감사로, 공직감찰부장이 외환은행 감사로 갔고 재정·경제감사국 과장은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이직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에서 이직을 줄이면서 감사업무 경력이 있어야 감사로 갈 수 있는 규정을 충족시키는 감사원 출신이 대거 옮겼다"고 밝혔다.
그 밖에 검찰청은 검사장이 SK에너지 사외이사로 갔고 검사는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옮겼다. 경찰청은 공제회 이사장이 씨큐어넷 사장으로, 대전지방청장이 삼성물산 상근고문으로 자리를 바꿨다.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KCC 사외이사로, 기획재정부 산하 수출입은행 감사는 우리자산운용 부사장으로 재취업했다.
국방 분야에서 방산업체로 이직한 사례도 있었다. 국방부 공군본부 정훈공보실장과 방사청 육군대령은 LIG넥스원 상근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겉보기에는 업무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만 해당 부서에서 직접 그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다면 재취업 심사를 통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업무영역을 가리지 않고 금융권으로 옮기는 고위직 공무원도 있다. 국방부 차관은 메트라이프생명 사외이사를, 전 총리실 국무차장은 신한증권 사외이사를 맡았다. 재취업 공무원이 가장 많은 곳은 기업 규모가 큰 삼성으로 118명이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퇴직 전 5년간 해당 직위에 있을 때 맡았던 업무가 아니면 재취업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면서 "업무 연관성 심사범위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렸지만 퇴직 전에 부서를 옮겨 업무 연관성을 없애는 '경력세탁'을 근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은 재취업 결과가 국회 등을 통해 공개되지만 국회나 대법원 헌법재판소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취업 심사는 아예 공개되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지방자치와 3권분립 원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 중인데 일부는 이름뿐인 공직자윤리위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