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태극전사들의 성적에만 집착하지 말고 한 경기 한 경기 열심히 응원하면서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월드컵 축구대표팀 서포터스 원정응원단을 이끌고 오는 15일 브라질로 떠날 예정인 반우용(42·사진) 붉은악마 의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 경기가 소중한 만큼 열심히 응원하고 오겠다"는 각오와 함께 이같이 말했다.
13일 개막되는 브라질월드컵의 한국 원정응원단은 총 120명. 14세 중학생부터 71세 최고령까지 축구 열혈팬들로 이뤄져 총 15일 동안 16강행 조별리그전이 벌어지는 쿠이아바·포르투알레그리·상파울루 등 3개 도시 경기장과 리우데자네이루·이과수 등을 돌 예정이다. 거리로만 족히 3,500㎞가 넘는 거리다.
반 의장은 "경비 때문에 먼 거리를 대부분 버스로 이동해 피로감과 안전이 가장 걱정된다"며 "하지만 선수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응원인 만큼 원정경기의 불리함을 딛고 태극전사의 든든한 '백'이 되고 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지난 2월 현지에서 한인회로 구성된 범동포지원회와 합동응원 협의도 마쳤다. H조 조별리그 중 쿠이아바(러시아전)와 포르투알레그리(알제리전)에는 교민들이 많지 않겠지만 조별 마지막 관문 벨기에전(상파울루)에는 교민들이 최대 2만명까지 동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벨기에전은 상대편도 대규모 응원단을 동원할 것으로 예측돼 가장 신경 쓰이는 경기다.
반 의장은 "경기장 내 활동제한으로 기본적인 태극기 통천(대형 태극기 펼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길거리 응원도 녹록지 않다. 조별리그가 대부분 새벽 경기인데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응원장소도 제한적이다.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있는 서울광장은 우선 배제됐다.
"최근까지도 외부에서 '응원을 자제해야 하지 않느냐'는 요구들이 많았어요. 붉은악마 회원들도 응원을 하지만 결코 세월호 아픔을 잊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태극전사들을 열심히 응원해 슬픔에 젖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반 의장은 6·4지방선거가 끝나 자치단체장들과의 협의와 조율도 수월해진 만큼 곧 구체적인 길거리응원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길거리는 붉은색으로 물들여진다. 붉은 티셔츠에 새겨진 한국대표팀 공식 슬로건은 '즐겨라, 대한민국!(Enjoy it, Reds!)'이다. '즐기라'는 것은 단순히 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반 의장은 "세월호도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회 병폐가 빚은 참사 아니냐"며 "경기에서도 승부를 떠나 매 순간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복해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한국의 예상성적을 묻자 "8강을 기대한다"며 조심스레 전망했다.
반 의장은 붉은악마 회원 수를 밝히지 않았다. 순수하게 축구를 사랑하는 모임으로 세력화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지난해 의장에 선출된 그는 매년 선출과 한번 연임이 가능한 붉은악마 규정에 의해 내년까지 의장직을 맡는다.
그는 지난 1996년부터 응원단을 조직했던 창단 멤버다. 월드컵 원정응원단 참가만 1998년 프랑스월드컵부터 2006년 독일, 2010년 남아공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마냥 축구가 좋아 20대 중반에 출생지 부산 지역 프로축구 팬으로 활동하다 붉은악마와 연을 맺었다. 그는 붉은악마 활동으로 가정에 소홀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같이 축구를 좋아해 축구 경기장에서 데이트를 즐겼던 아내는 지금 초월한 상태"라며 멋쩍게 웃었다. 현재 한 국내 증권 자회사에서 재무설계사로 근무하는 그는 "직장생활과 응원단 대표를 다 완벽하게 잘 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소 희생과 양보가 뒤따를 수밖에 없어요. 회사에서는 한국 축구를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격려해주고 있습니다. 월드컵이 끝나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지요."
20년 넘게 축구에 빠져 있는 그는 영원히 붉은악마 일원으로 뛸 것임을 공언했다. 그는 "앞으로 더 나이를 먹어도 주어진 역할이 있으면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축구 팬들의 염원처럼 월드컵의 열기가 프로축구 K리그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적보다는 축구 자체를 사랑하는 성숙한 축구문화가 만들어지기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