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12월27일] 비글호 & 찰스 다윈

1831년 12월27일, 영국 폴리머츠항. 길이 27.5m, 242톤짜리 중형 범선이 닻을 올렸다. 목적지는 남미와 태평양. 지질조사와 해역탐사가 임무였다. 5년에 걸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 범선의 이름이 길이 남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글호에 승선할 당시 다윈의 나이는 22세. 전공인 의학에 싫증을 느껴 박물학과 지질학ㆍ신학을 공부한 젊은 학자는 4년10개월을 남미와 태평양ㆍ오스트레일리아의 거친 바다와 섬들을 오가며 지질학과 생물학에 빠져들었다. 귀국 후 3년이 지나 다윈은 ‘모든 생물은 신이 창조했다’는 창조론에 도전하는 저술을 내놓았다. ‘비글호 항해기’는 출간과 동시에 논란에 휩싸였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50세에 발표한 ‘종의 기원’은 다윈을 뉴턴과 코페르니쿠스에 버금가는 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다윈 때문에 성역이 없어진 학문의 발전은 속도를 더해갔다. 다윈의 진화론을 낳은 비글호의 탐사는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 바다에 대한 끝없는 투자를 말해준다. 비글호가 진수된 해는 1820년. 영국은 비글호와 동일한 제원인 ‘체로키급’ 범선을 117척이나 만들어냈다. 척당 건조비 7,800파운드가 들어간 체로키급은 전세계 해양을 누비며 조사하고 다녔다.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의 신경세포이자 척후병이었던 셈이다. 제국의 확장을 목적으로 건조돼 자연과학사에 이름을 남긴 아이러니를 갖고 있는 비글호는 1870년 고물상에게 불하돼 해체됐지만 배의 이름은 이어지고 있다. ‘비글’이란 이름을 가진 영국해군 함정만 8척에 이른다. 미국과 러시아ㆍ중국의 우주개발에 맞서 유럽연합이 지난 6월 쏘아올린 화성 탐사선의 이름도 ‘비글’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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