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 시행땐 국내 제조업 큰 타격"

전경련 "해외생산 늘어 고용환경에도 악영향"


국내와 해외에 공장을 가진 반도체 기업 A사는 온실가스배출권 비용부담 때문에 국내 생산량 조정을 고민하고 있다. 정부의 배출권거래제 1차 계획기간인 내년부터 오는 2017년까지의 부담 예상액을 자체 분석해본 결과 최대 6,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외 공장이 있는 곳은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지 않아 국내 사업장과 제품원가 차이가 더 벌어지기 때문에 상당한 국내 생산물량을 해외로 돌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A사의 사례는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도입이 국내 제조업에 큰 타격을 입히고 산업 공동화 현상을 가속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杞憂)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경영에 직격탄을 맞는 기업들의 사례를 유형별로 공개하고 시행시기 연기와 할당량 재검토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디스플레이 업체 B사는 A사와 상황이 비슷해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될 경우 해외 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 업체는 1차 계획기간에 약 6,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해 중국 기업과의 액정표시장치(LCD) 가격 차이가 1㎡당 7,000원에서 300원 수준까지 좁혀질 것으로 전망됐다. 가뜩이나 기술격차가 줄어드는 상황에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경우 생산기반의 해외이전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석탄을 원료로 하는 일관제철 공정을 가진 두 철강업체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공정 특성상 온실가스배출량이 많아 1차 계획기간에 두 철강업체의 배출권 비용 부담 총합이 최대 2조8,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철강업의 조강생산 예상 물량은 약 7,200만톤이지만 정부의 할당계획안에 맞춰 생산하면 내년 이후에는 연간 6,500만톤 이상은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게 이들 업체의 주장이다. 이 중 한 업체는 8,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배출권거래제로 경제성이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조선·해양·플랜트·시멘트 등 침체를 겪는 업종의 위기 기업은 부담이 더 늘어난다. 지난해 3,5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시멘트 기업 C사는 1차 기간의 배출권 비용 예상액을 700억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로 적자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배출권거래제는 국내 투자·고용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경영난을 겪는 위기 기업에는 '맹독'이 될 수 있어 시행시기를 연기하거나 최소한 산정된 할당량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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