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의 심장, 스토리를 키워라] <상> 무한흥행의 원동력

겨울왕국… 해리포터… 쿵푸팬더… 라스트 사무라이…
세계 곳곳 신화·민담까지 빨아들여 대히트
할리우드 성공 밑바탕엔 '이야기의 힘' 있다



소재 바닥나자 다른나라서 모티브 따와 각색
잘 만든 흥행작이 국가경제 견인차 역할까지
춘향·홍길동 등 우리 이야기도 문화산업화를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마니아인 7세 딸애의 성화에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을 찾은 A씨는 깜짝 놀랐다. 엘사 공주 드레스 한 벌의 가격이 무려 1,199달러로 우리 돈으로 120만원이 넘는 것이 아닌가. 이것마저 몇 개 남지 않았다는 안내글에 급하게 결제버튼을 눌렀다. '겨울왕국'은 더 이상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 이미 아마존에는 관련 상품이 수백 개나 깔려 있었다. 엘사의 동생인 안나의 드레스도 474달러에 결제했다. 한편 남자아이 둘을 둔 B씨는 집안에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캐릭터 용품으로 가득하다. 스파이더맨의 마스크, 아이언맨의 슈트, 토르의 망치, 캡틴아메리카의 방패 등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런 미국산 장난감에 '포위'돼 있다.

◇배우가 아니라 스토리가 관건=전반적인 문화콘텐츠산업, 특히 영화산업의 경우 최근 세계에서 가장 핫이슈인 곳은 디즈니다. 디즈니 안에 있는 디즈니애니메이션스튜디오와 마블스튜디오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스튜디오는 극장용 '겨울왕국'과 '라푼젤'을 통해 세계 애니메이션업계를 들었다 놨다 하고 또 TV용 '리틀 프린세스 소피아' '제이크와 네버랜드 해적들' 등으로 전세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마블스튜디오는 '어벤저스' 시리즈를 포함, 스파이더맨·아이언맨·토르·헐크·캡틴아메리카 등 수많은 미국식 슈퍼히어로 영화를 쏟아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들이 기본적으로 이야기(스토리)의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중요한 것은 배우가 아니라 스토리라는 것이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시리즈에서도 배우는 중요하지 않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경우 주인공인 '피터 파커'의 얼굴은 계속 바뀌고 있지만 영화는 박스오피스 기록을 연달아 갱신하고 있는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말할 것도 없다. 할리우드가 이야기에 쏟는 정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올해 국내 상영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겨울왕국'의 제작 과정을 보면 이야기에 쏟는 그들의 노력을 알 수 있다. 디즈니는 다소 딱딱한, 덴마크인 안데르센의 원작동화 '눈의 여왕'에서 모티브를 빌려와 자매의 사랑, 왕국의 운명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에 환상적인 영상을 입힘으로써 지금 보는 '겨울왕국'이 완성됐다.

'겨울왕국'의 대표 프로듀서인 피터 델 베초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처음 '눈의 여왕'으로 스토리 작업을 할 때 엘사와 안나는 공주가 아니었고 자매도 아니었다. 또 자매의 이야기만으로도 스토리가 빈약해 '왕국의 운명'이라는 코드를 넣었다."

이를 통해 엘사는 악당인 눈의 여왕 역할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자기극복 코드로 변신했다. 용모 면에서도 풍성한 금발을 찰랑거리는 매력적이 여성이 됐다. 베초는 "우리는 모든 순간 느끼는 두려움(엘사)을 긍정의 힘(안나)으로 이겨낸다는 내용으로 고쳤다"고 덧붙였다.

마블스튜디오도 갖가지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계층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원작 만화의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영화의 성공을 바탕으로 캐릭터상품이나 테마파크 등 다른 분야에도 상품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이야기 빨아들이는 할리우드=할리우드는 무서운 속도로 전세계 이야기 소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토이스토리'의 카우보이 역할 같은 미국 자체의 이야기도 있지만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대신 전세계 국가에 퍼져 있는 이야기를 각색해 미국화한 후 다시 자신의 문화상품으로 파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쓰인 것은 오래된 일이다. 최근 영화로 등장한 '헤라클레스' '토르' '트로이' '300' 등이 모두 이런 것이다. 최근에는 켈트 등 북유럽 신화가 소재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에 나오는 마법사·난쟁이·거인·요정 등은 북유럽 신화에서 끌어온 것이다.

할리우드의 시각은 이미 유럽을 넘어섰다. 중국에서 '뮬란'과 '쿵푸팬더' 등의 소재를 끌어왔고 일본에서는 '라스트 사무라이' '게이샤의 추억' 등을 끌어냈다. 중동의 '알라딘'은 마치 미국식 슈퍼히어로처럼 움직인다.

문제는 모든 문화가 할리우드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데르센의 원작동화 '인어공주'를 읽은 사람들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보고 당황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만 보고 자라난 아이들은 인어공주의 결말이 해피엔딩인 줄 안다. 원작에서는 인어공주가 거품으로 변하면서 죽는데 이것을 디즈니는 통속적으로 바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전통이야기 소재가 변용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춘향이나 장화·홍련, 홍길동이 할리우드 식으로 흡수될 경우 커다란 문화적 손실이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발굴해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야기, 국가 경제 견인 잠재력=잘 만든 이야기 한편은 해당 기업을 포함, 국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최근작인 '겨울왕국'은 역대 최대 흥행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되면서 전세계적으로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의 입장권 수입을 올렸다. 이외에 관련 상품판매 등 파생수입도 몇 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겨울왕국'을 흥행시킨 디즈니는 앞서 1·4분기 19억1,700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동기에 비해 27% 급증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순이익은 지난해 61억달러보다 25%가량 늘어난 7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문화산업의 급성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제조업의 대표주자인 애플의 이익 증가율이 최근 주춤한 것과 비교된다.

이야기를 통한 최고의 히트작은 '해리 포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지난 1997년 처음 책으로 출간된 후 지금까지 67개 언어, 총 4억5,000만부가 팔렸다. 출간 후 10년 동안 영화를 포함해 관련 상품으로 308조원의 총매출을 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강성삼 올댓스토리 스토리커뮤니케이션실장은 "반만년 역사의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 못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며 "이를 어떻게 잘 이용하는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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