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안아주는 신뢰 사회가 경제 번영"

■ 폴 잭 교수 전미경제학회 개막 연설
옥시토신 호르몬 증가가 감정 공유·도덕적 행위 유발
'신경경제학' 실험 통해 밝혀
유한킴벌리 성공사례 꼽아


"뉴욕시가 타임스스퀘어에 갖다 놓은 벤치는 사람들 사이의 교제를 촉진한다는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 사회적 감정공유, 이노베이션(혁신)의 원천이다. 바로 '도덕 분자(moral molecule)' 옥시토신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폴 잭(사진) 클레어몬트대 대학원 교수는 요즘 각광받고 있는 신경경제학을 주도하고 있는 경제학자다. 그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촉진시키는 물질이라는 것을 10여년의 걸친 연구 끝에 규명해냈다.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합리적인 인간'을 버리고 인간의 일탈을 상정하고 분석한 것이 행동경제학이라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뇌활동을 분석해 의사결정을 이해하는 것이 '신경경제학'이다.

잭 교수는 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개막식에서 '신뢰의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 of Trust)'을 주제로 강연했다. 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학회에는 전세계에서 1만여명의 경제학자ㆍ학생 등이 참가한 가운데 500여개 세션이 진행된다. 지난해 개막연설은 석학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맡아 금융자본주의의 개혁 필요성을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주류 경제학에 치우친 데서 벗어나 2년 연속으로 금융위기 이후 심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대안 마련의 성격이 강한 셈이다.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물질과 성립 공식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 잭 교수는 대상 물질로 포유류에만 나오는 호르몬 옥시토신을 지목한다. 이 물질은 동물들을 공존하게 하고 인간에는 출산과 수유를 촉진하게 하는 물질로 알려져 왔다. 잭 교수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옥시토신이 많이 분출되면 분출될수록 인간이 다른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고 도우려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반면 약 5%의 인간에서는 이 물질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냈다. 이들이 바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다.

잭 교수는 번영된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의 옥시토신 증가→감정이입 확대→도덕성 증가→신뢰도 향상→경제적 번영→옥시토신 증가'의 순환고리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뢰도가 높은 사회가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반면 신뢰도가 낮을수록 가난하다는 사실을 옥시토신이라는 도덕분자의 역할로 설명했다.

그는 기업의 성공사례로 한국의 유한 킴벌리를 꼽았다. 직원들에게 권한을 대폭 이임하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가족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 구성원들의 이노베이션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그 결과는 종이제품에 있어서 P&G를 이겼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잭 교수는 옥시토신의 역할을 자신이 규명했지만 이미 250여년 전 애덤 스미스가 작동의 원리를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애덤 스미스는 1759년 '도덕감정론'을 통해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다른 사람과 감정공유를 통해 행복을 느끼며 상의하달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도덕적인 생명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잭 교수는 마지막으로 "마사지ㆍ댄싱ㆍ기도 등을 할 때도 옥시토신이 증가한다"며 "서로 많이 안아주는 사회가 경제적 번영도 가져올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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