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버냉키, 월가만 소통하나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오는 2월3일 워싱턴 DC 소재 내셔널프레스 클럽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다. 버냉키 의장은 45분가량 진행될 기자회견에서 국내외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제2차 양적완화 등 FRB 통화정책 방향을 설명한 뒤 기자로부터 몇 가지 질문을 받아 답할 예정이다. 세계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FRB 의장이 던질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중요하지만 이번 이벤트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 또한 적지 않다. FRB 수장이 기자회견을 갖는 것은 지난 1913년 FRB가 설립된 후 처음으로 월가는 98년간 지속돼온 금기를 깨는 것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한세기 걸친 禁忌를 깬다 버냉키 의장은 어떻게 하면 시장에 통화정책 방향과 FRB의 의도를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는지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한다. 유럽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 가운데 통화정책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갖지 않는 곳은 FRB가 유일하다. FRB는 연간 8차례의 연방공개정책회의(FOMC)를 가진 뒤 짤막한 정책성명서 한 장을 공개하는 게 전부다. FRB 의장이 미디어 직접 접촉을 피하는 것은 FRB의 비밀주의 전통이 워낙 뿌리깊은데다 혹 말실수 하나로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던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취임한 지 채 100일도 되기 전인 2006년 4월 한 사적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미모의 CNBC 앵커인 마리아 바르티로모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다. '시장이 내 의중을 잘못 이해했다'며 며칠 전 의회에서 한 자신의 발언 취지를 바로 잡아줬는데 이것이 장중에 방송 전파를 타면서 세계 금융시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앨런 그린스펀 FRB 전 의장이 암호해독 수준의 모호한 화법을 즐긴 것과 달리 그의 메시지는 단순 명료하다. 시장과의 소통 통로인 연설도 잦은 편이다. 역대 FRB 수장 가운데 가장 시장교감적 의장이라는 칭송은 과언이 아니다. 형식도 파격적이다. FRB의 독립성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을 글을 신문사 기고로 내는가 하면 양적완화에 대한 따가운 비판여론이 일자 TV 대담에도 두 차례 출연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기자회견은 시장에서 본다면 그다지 영양가가 없을지도 모른다. 기실 이번 빅 이벤트는 제2차 양적완화 정책의 비판 여론을 불식시키려는 취지로 마련됐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11월 FOMC 위원들과 화상회의로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놓고 토의를 벌였는데 이때는 FRB가 제2차 돈 풀기 정책 돌입을 최종 결정한 시기와 일치한다. 약달러 부작용은 침묵 버냉키 의장은 숱하게 양적완화 정책을 설명했으나 인플레이션 위험이 없다고 해명했을 뿐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환율 갈등 등 해외 쪽 부작용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해왔다. 약달러가 국제 원자재 가격 앙등을 야기하고 이머징마켓으로의 핫머니 유입을 초래함에도 버냉키 의장은 철저히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을 더 찍어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역설해왔다. 수렁에 빠진 미 경제를 걱정하지 이머징마켓의 고통과 식량 폭동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환율 정책이 FRB가 아닌 재무부 몫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환율문제를 입밖에 내지 않은 것만도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의 잘못된 환율정책에 미국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재무부 논리에 입을 맞췄고 2009년 10월에는 통화스와프 수혜를 거론하면서 한국의 원화가치를 도마에 올리기도 했다. 약달러발 인플레이션과 핫머니 유입이 어디 해당국만 오롯이 짊어져야 할 과제인가. 값싼 이지머니(easy money)로 무장한 월가 투기세력의 상품 시장 준동은 또 어떤가. 글로벌시장의 슈퍼 중앙은행 총재라면 양적완화 정책을 자국 이기주의 틀에만 맞추지 말고 이제는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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