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도 반도체식 전략과 수익구조의 신화를 그대로 쓰겠다.” 삼성전자의 LED TV. 지난 3월 처음 출시될 때만 해도 시장전망과 신개념 제품이 맞느냐의 문제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TV업계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면서 올해 대표적 히트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9일 “LED TV의 대성공으로 TV사업이 반도체식 시장 선도와 수익구조를 갖추게 된 점은 매우 의미가 있다”며 “이를 통해 세계 TV업계의 선두로서 비로소 ‘완전 궤도’에 올랐다”고 말했다. 반도체식 구조란 게 어떤 의미일까.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대규모 연구개발(R&D)과 선행투자로 신제품을 가장 먼저 내놓고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순환구조가 이미 형성됐다. 반도체는 전형적인 ‘타이밍의 산업’이다. 한 기업이 어느 순간 최신 제품으로 시장을 점유하면 대규모 R&D와 설비투자에서 뒤처진 경쟁업체는 1년 이상 비슷한 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 경쟁업체가 따라오기 시작하면 앞선 기업은 한단계 발전된 기술을 내놓고 또 시장을 장악한다. 수익구조 격차도 확실히 벌어진다. 초기 시장을 선점하면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면서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팔아 치울 수 있다. 경쟁업체가 쫓아올 때쯤이면 기존 제품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선행업체는 쌓아놓은 수익을 발판 삼아 다음 제품을 출시한 뒤 또 독점시장을 형성, 돈을 쓸어 담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64Mb D램에서 승부를 갈랐다. 최근까지 주력 제품인 1Gb와 막 떠오르기 시작한(삼성전자가 최근 최초로 양산) 2Gb 제품까지 계속 최초 행진을 이어가면서 반도체를 1990~2000년대에 걸쳐 20년 동안 최고의 캐시카우로 키웠다. 삼성전자는 수십년간 반도체에서 갈고 닦은 이 공식을 TV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출발점은 보르도TV였다. 2006년 와인잔을 연상시키는 이 시리즈로 삼성전자 TV는 세계 1위에 올랐고 브랜드 이미지가 정상급으로 바뀌었다. 보르도TV가 나오자 경쟁사들은 디자인 혁신에 놀라면서도 금방 흉내 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여기서 교훈을 얻는다. ‘디자인조차 흉내 낼 수 없게 하라.’ 삼성전자 연구진에 떨어진 특명. 이는 2008년 크리스털로즈 시리즈로 이어진다. 신비한 유리 질감의 테두리 디자인은 경쟁사의 제품을 압도했다. 크리스털로즈 베젤(테두리)의 이중사출 기술은 삼성만 가능한 것으로 이를 위해 연구진은 베니스의 유리 기술을 참고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2009년 LED TV는 보르도와 크리스털로즈를 잇는 삼성만의 히트작 3탄으로 여기서 TV 1위의 쐐기를 박겠다는 구상이다. 고열을 견딜 수 있는 에지(측면광원) 방식의 LED 패널 기술 또한 경쟁사에 앞선 것으로 ‘핑거 슬림’이라는 삼성만의 얇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나온 원동력이다. 한 마디로 ‘디자인도 기술’이라는 삼성전자의 발상의 전환이 먹혀 들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LED TV에서 확실하게 타이밍의 승부수를 던졌다. 아무도 시장 성장을 예측하지 않을 때 과감하게 기술을 개발하고 대대적인 마케팅에 돌입했다. 그 결과 세계시장 점유율이 95%에 육박하는 성과를 올렸다. 경쟁업체들은 뒤늦게 LED TV의 시장성을 인정하고 승부에 뛰어들었지만 단기간에 삼성을 잡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삼성전자는 하반기 신제품 출시를 추진하고 있다. LED TV가 각 브랜드별로 시장에 쏟아져나오면 가격은 당연히 낮아질 것이다. 삼성전자는 미리 쓸어 담은 현금력을 바탕으로 기존 제품군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해 경쟁사의 추격에 맞서는 한편 앞선 기술력으로 차기 제품을 내놓는다. 시장을 계속 리드하면서 독보적인 수익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반도체와 유사한 LED 부품사업에서 삼성의 독주를 견제할 TV업체는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삼성은 기술력뿐 아니라 당장 유휴 반도체 라인을 LED용으로 전환할 수 있을 정도로 설비전략 면에서도 유리하다. 뒤집어보면 삼성전자가 TV업계를 자사가 자신 있어 하는 반도체(LED) 영역으로 끌어들인 측면도 강하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LED TV 디자인은 LCD TV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는 콘셉트에서 나온 것”이라며 “기술격차가 벌써 벌어지고 있다. 초기 시장은 프리미엄 시장일 수밖에 없어 선점이 중요하며 당분간 이 분야의 독주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