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비정규직 대우도 못받는 연구원

“희망이 없는 데 무슨 연구를 합니까. 사기진작 운운했지만 결국 뜬구름 잡는 얘기에 불과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 내용을 접한 정부의 한 출연연구기관(출연연) 소속 A박사는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달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 비정규직 보호법 취지에 맞춰 정부가 공공기관 기간제근로자 중 7만1,861명을 무기계약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과학기술계 인력들은 이 같은 특혜(?)에서 대거 탈락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대표적 출연연으로 이번 대책을 통해 상당수 인력의 정규직 전환을 기대했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최종 전환인원은 5명에 불과했다. 생명연과 함께 대표적 출연연으로 손꼽히는 한국기계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은 더 초라했다. 각각 2명, 1명에 그쳤다. 관계자에 따르면 생명연은 당초 기획예산처에 무기계약직 전환대상자가 모두 80여명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정부는 전체 7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을 전환대상으로 확정하면서 각 기관 요구치의 63.8%를 충족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연구기관들의 경우 이 같은 평균치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 셈이다. 연구기관의 정규직 전환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연구과제중심제(PBS)’ 때문이었다.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비정규직 박사급 인재들은 지난 96년 이후 PBS가 정착되면서 인건비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아닌 연구과제 발주처로부터 얻고 있다. 때문에 프로젝트가 끝나면 출연연과의 근로관계가 자동종료된다. 따라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정부 측 논리다. 기획처의 한 관계자는 “2년 이상 근무한 경우에도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전환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PBS 때문에 유능한 국가 R&D 인력들은 비정규직 보호법에서도 이른바 ‘열외’인 셈이었다. PBS는 올 초 과학기술계의 수장인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조차 “연구자들이 프로젝트 따내는 데 매달리면서 ‘보따리장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문제점을 인정했다. 여기에 신분불안 문제까지 가중된다면 국가 R&D의 장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