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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대형마트를 방문한 김수진(37)씨는 여느 때와 같이 우유 판매대 앞에 섰다. 하지만 김씨는 우유 가격만 따져 제품을 결정하지 않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다섯 살 배기 큰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만난 또래 아이 학부모로부터 '아이가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일수록 마시는 우유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생후 7개월인 둘째 때문에 큰 아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날만큼은 지방함량이 낮으면서도 뼈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우유를 골라 카트에 넣었다.
이제 흰 우유도 골라 마시는 시대다. 자신의 몸 상태와 나이, 생활습관에 따라 우유 속 영양소를 따져가며 즐기는 소비 습관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덕분이다. 예전에는 우유라면 무조건 흰 우유냐 아니면 맛과 향을 첨가한 가공우유냐로 나뉘었지만 어린아이를 둔 가정이나 몸매 관리를 해야 하는 젊은 여성, 성인병 예방이 필요한 중장년층 등 특정 소비층에 따라 지방과 칼슘 함량을 조정한 '맞춤형 우유'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흰 우유 시장을 살펴보면 이 같은 변화는 해를 거듭하며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전체 시장의 4%에 불과했던 저지방(무지방 포함) 우유는 2년 뒤에 12%까지 점유율을 키웠고, 올해는 19%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흰 우유 시장규모가 1조4,000억원대로 추산되니까 저지방 우유는 이 가운데 2,700억원 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생활 습관과 개인별 특성에 따라 우유를 사 먹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모습이다.
지난 1975년 저지방 우유를 접한 미국의 경우 우유 제품 중에서 저지방 2% 우유가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전체 흰 우유 시장의 33%를 차지하고 있는 해당 제품 카테고리는 유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1990년대부터 상승세를 타 현재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우유가 됐다. 2012년 미국 농무부(USDA)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 저지방 우유가 판매량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은 일반우유(지방 함량 3~4%), 1% 저지방 우유, 무지방 우유 순이다. 특히 미국소아과학회(APP)가 만 2세부터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유제품을 저지방 타입으로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캐나다연방보건부 등 권위 있는 기관서 두뇌발달과 성장을 위해 2% 저지방 우유를 섭취할 것을 권장한 이후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아동의 경우 하루에 우유 2~3잔만 마셔도 하루에 권장하는 지방섭취량의 50% 이상을 섭취하기 때문에 저지방 우유가 필수다.
이렇듯 저지방 우유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이나 호주, 일본 등 우유 시장이 발달한 나라에서 일상 속에 파고든 익숙한 제품이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메이지와 모리나가 등 주요 업체들이 지방함량을 세분화하고 저온살균과 고칼슘 함유 등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 저지방 우유를 정착시켰다.
국내 시장은 이제 날갯짓을 시작한 단계다. 늦게 시작했으나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은 만큼 업계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매일·서울·남양·파스퇴르·푸르밀 등 5대 유업체 중에서도 매일유업이 저지방 우유 시장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
매일유업은 최근 선진국 우유 시장의 발전 추세를 분석해 지방 함량을 세분화한 제품들을 출시했다. 지방함량 1%에 고정돼 있던 '저지방&고칼슘 우유' 라인을 지방 함량에 따라 2%, 1%, 0%로 나눠 소비자 필요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이 중에서도 2% 제품은 칼슘을 두 배로 높여 (200㎖당 440㎎) 2잔만 마셔도 성인의 일일 평균 칼슘 권장량인 700~1000㎎, 유아동 500~700㎎를 채울 수 있도록 해 건강 식단에 안성맞춤인 제품이다. 또한 우유 본연의 고소한 맛을 살리기 위해 특수 공법을 활용한 점도 '저지방&고칼슘 2·1·0 우유'의 특징이다. 매일유업은 현재 저지방 우유 군에서 2위에 머물고 있는 상황을 뒤집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저지방 우유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목표 아래 이번 신제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기름지고 육류 위주의 식사가 널리 퍼진 요즘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를 위해서는 저지방 우유가 필수적"이라며 "아직은 저지방 우유에 대한 호응이 일반 우유보다 낮지만 앞으로 소비자 호감도는 물론 시장 점유율도 꾸준히 상승할 것으로 예상해 관련 제품 라인을 확대 보강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 저지방 우유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서울우유는 아직 지방함량 1%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울우유의 저지방 우유는 원유의 지방을 1/4로 줄이고 칼로리도 40%까지 낮췄다는 점을 강조한다. 남양은 '맛있는 우유 GT' 라인에서 나뉜 저지방 우유를 선보이고 있으며 파스퇴르와 푸르밀 역시 저지방 우유 제품을 판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