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재정/중앙 정부 실태] 공짜 복지 가수요에 보육비용 두배… 나라 곳간 파탄날 판

올 0~2세 무상보육 예산 10~11월께 소진 예상
정치권 공약 모두 이행에 5년간 최소 268조 소요


정치권의 무리한 선심성 공약과 정부의 밋밋한 대응이 맞물려 생긴 상처가 결국 반년 만에 곪아터졌다.

정부가 4일 0~2세 전면 무상보육을 선별적 지원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은 단순히 지방정부의 아우성 때문만은 아니다. 공짜 복지에 편승해 밀려드는 복지 '가수요'를 지방정부뿐 아니라 중앙정부가 감당하기에도 벅차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대선을 불과 반 년도 채 남기지 않은 가운데 정치권이 또다시 '0~2세 무상보육'과 같은 포퓰리즘적 복지 정책을 잇따라 꺼내 들 경우 비교적 건실하다고 평가 받는 중앙정부 재정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

지난 4.11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기획재정부 복지 태스크포스(TF)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여야의 복지 공약을 모두 이행하려면 앞으로 5년간 최소 268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올해 정부 예산(325조4,000억원)의 80%가 넘어 경기악화로 성장률까지 하향 조정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현재 정치권이 무분별한 무상복지 공약을 추진하면서 가장 크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무상복지가 불러오는 가수요 부분.

재정부에 따르면 3월부터 6월까지 0~2세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기존 소득 하위 70%)을 실시한 결과 당초 정부가 예상한 인원보다 5~6만명이 넘는 인원이 보육시설로 몰린 것으로 분석됐다.

공짜복지에 편승해야겠다는 생각에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아도 될 만한 가정에서도 영아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비율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우 영아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비율이 30%인데 우리나라는 54%에 달한다"며 "무상보육 정책이 가수요를 부르면서 가정에서 충분히 양육할 수 있는 경우나 고소득층의 영아까지 보육시설에 보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밀려드는 가수요로 지방정부뿐 아니라 중앙정부 재정에는 당장 빨간불이 켜졌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0~2세 무상보육에 배정된 정부 예산은 3조8,000억원 정도인데 오는 10~11월께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후 예비비를 신청해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한다"토로했다.

정부는 당초 올해 0~2세 무상보육 추가 예산으로 7,400억원(국비 3,679억원+지방 매칭비 3,788)을 예상했으나 보육시설 이용 인원 급증으로 이 비용은 올해 말까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돈이 없어 아우성치는 지방정부 예산 문제에 가려 중앙정부의 재정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무상보육 예산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절반(서울 제외)씩 부담하는 것을 감안하면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당장 수천억 원의 예산이 추가 소요되는 셈이다.

더구나 지방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지방채에 대한 이자 부담 등까지 중앙정부가 떠안는다면 무상보육과 관련한 중앙정부 예산은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복지 가수요의 문제점이 정치권이 추진하는 각종 무상복지 정책 곳곳에서 터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야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액 인상이나 연금수급 대상자 확대 등의 복지공약 같은 경우 국가 재정을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이 있다.

당장 4월 총선에 앞서 재정부 복지 TF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여야가 추진하는 복지 공약을 전면 시행할 경우 연간 최소 53조6,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총 예산이 325조4,000억원, 복지 예산이 92조6,0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장 내년부터 최소한 총 예산의 16.5%, 복지 예산의 57.9%를 증액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시나리오라면 총 정부 지출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은 앞으로 5년 후에는 40%대에 육박해 재정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총 정부 지출에서 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26.2%에서 지난해 2012년 28.5%까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책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우리 정부의 복지지출이 아직까지 OECD 평균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지만 정치권이 지금처럼 무상복지에 대한 환상을 키우고 이에 따른 복지 수요가 급격히 증가할 경우 중앙정부의 재정 건전성 유지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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