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의 단독보도로 밝혀진 '조세회피처로 10년간 2,800조원이 송금됐다'는 사실은 두 가지 점에서 놀랍다. 첫째는 그 규모이고 두번째는 확산속도다. 특히 지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조세회피처 62개국에 송금한 개인의 수가 50% 증가했다는 사실은 고액자산가들의 재산 해외도피 의혹과 직결될 수 있는 것이어서 당국의 각별한 관심과 조사가 요구된다.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대목은 연도별 송금 추이다. 정권 말기로 갈수록 해외송금이 증가하는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단순히 증가추이를 반영하는 것인지 또는 정치구도의 변화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해외 자금운용을 늘렸는지 따져봐야 한다. 만약 후자라면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또 하나의 후진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국세청과 관세청이 해외송금 내역을 세밀하게 들여봐야겠지만 금기사항도 있다. 조세회피에 대한 송금이라고 해서 모두 유출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수출이나 해외공사 수주시 신속한 자금흐름을 위해 송금절차가 간편하고 세금도 적은 조세회피처를 이용하는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유출 의혹을 받는다면 우리 스스로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불필요한 의혹을 가시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 조세회피처로 10년간 송금된 2,800조원 중에는 해외로 나간 자금이 국내로 되돌아왔다가 다시 나가는 순환과정을 거친 자금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행이나 조세당국이 유출뿐 아니라 유입에 관련된 자료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정상적인 자금거래를 해외도피로 의심 받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차제에 유출통로를 봉쇄하는 방안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현행 10억원인 해외재산 신고액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추고 신고 불이행시 벌금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바, 더 이상 늦출 게 아니다. 국회는 조속히 처리해야 마땅하다. 마침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방침으로 은행의 거액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불법 해외유출의 통로를 봉쇄한다면 돈은 결국 장롱 속에서 빠져나와 생산과 고용ㆍ소비를 늘리고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정부는 국내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도 국부의 해외유출을 감시하고 통로를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