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19일 오후2시, 북한 함경북도 신포시 금호지구. 발전용량 1,000㎿급 경수로 건설공사 기공식이 열렸다. 북한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경제협력사업을 축복하듯 오랜 가뭄에 시달렸던 이 지역에는 모처럼의 단비가 내렸다. 사업의 시발점은 북미 간 제네바 합의. 북한이 전력생산을 명분으로 건설하려는 영변 원자력발전소가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흑연 감속로라는 점에 주목한 미국은 북한과의 오랜 물밑대화를 거쳐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다. 북한이 흑연 감속로를 폐기하는 대가로 미국이 책임지고 경수로를 지어준다는 합의에 따라 시작된 공사가 제대로 진행됐다면 1,000㎿급 경수로 2기가 이미 완공돼 전력을 생산하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종합 공정률 34.45% 상태에서 2003년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개발 의혹으로 중단된 공사는 결국 이어지지 못한 채 2006년 완전 종결되고 말았다. 북핵으로 시작돼 북핵으로 끝난 셈이다. 공사중단은 손실을 불렀다. 미국의 강권으로 총공사비의 70%를 부담한 한국은 11억3,700만달러를 퍼붓고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청산 절차도 지지부진하다. 공사가 재개되지 않는다면 추가 손실도 불가피하다. ‘경수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은 공사비 분담 비율을 정한 장본인이라는 원죄에서, 야당은 청산을 늦춰 손실을 키웠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사의 반복 가능성이다.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다 북미 직접대화로 뒤통수를 맞고 억지로 돈을 냈던 1990년대 중반과 상황이 비슷하게 돌아간다. ‘퍼주기’가 아니라 ‘털리기’가 재연될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