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총선 불공정” 국제 이슈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압승을 가져다 준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선거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의 국제기구들이 7일 실시된 러시아 총선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데 이어 미국 정부까지 가세하고 나서 부정선거 논란은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국가두마 선거에 400여명의 참관단을 파견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러시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면서 관권 및 언론을 동원해 선거가 불공정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OSCE 인권ㆍ민주위원회의 브루스 조지 위원장은 8일 “현직(관료, 의원)을 이용한 수많은 특혜와 국가의 장비, 자원 등의 편파적 활용이 선거 결과의 왜곡을 낳았다”면서 “집권세력은 TV까지 동원해 경쟁 정당들에 불리한 선거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시베리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노골적 부정선거가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국가두마 선거는 국제기구들이 제시한 민주주의 원칙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도 즉각 러시아 총선 공정성 시비에 동조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8일 “OSCE는 러시아 선거의 공정성에 우려를 표명했는데 우리도 함께 우려한다”며 “우리는 러시아가 자유언론, 정당정치 등의 민주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정치ㆍ경제개혁에 계속 매진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도 “OSCE가 밝힌 것처럼 러시아가 친여 정당들을 위해 행정력을 광범위하게 동원한 것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양국 관계 악화를 피하려는 듯 “새로 선출된 러시아 하원이 민주적인 경제개혁을 지속하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관계를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제1야당인 러시아 공산당의 겐나디 쥬가노프 당수는 “이번 선거는 부끄러운 희극”이라면서 “선거라고 불리는 메스꺼운 쇼에 참여했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과 여당은 부정선거 시비를 일축했다. 푸틴 대통령은 8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총선은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선거였다”며 “이번 선거 결과로 민주주의를 위해 일보 전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인테르팍스 통신은 미국측의 우려 표명에 대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2000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미국인이 그 같은 언급(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할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450석을 선출하는 이번 총선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통합러시아당(222석) 자유민주당(LDPRㆍ38석) 조국당(45석) 등 3당의 의석을 합칠 경우 개헌선(300석)보다도 5석이나 더 많다. 때문에 푸틴 세력은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낡은 정치체제가 붕괴하고 새로운 정치 시대가 열렸다”고 환호하고 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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