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어스 더비(Elias Hasket Derby). 미국 최초의 백만장자(millionaire)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백만달러의 요즘 가치는 원화로 약 9억6,135만원. 서울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한 채 값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백만장자가 무수히 많을까. 글쎄다. 더비가 활약했던 미국 독립전쟁 시기 백만달러의 가치는 오늘날의 5억달러에 가까웠으니까. 더비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어 미국 최초의 거부로 기억될까. 해적질과 무역 덕분이다. 1739년 8월16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지역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상업학교를 거쳐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버지 회사에서 회계와 부기를 익혔다. 바다에 나간 적이 없으면서도 대형 선단을 운영했던 부친과 달리 더비는 현장을 중시해 영국 배보다 속도가 빠르고 튼튼한 범선을 건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독립전쟁에서는 있는 대로 돈을 긁어 모았다. 미국 독립군의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해운업자로, 항해능력이 우수한 범선 제조업자로, 적국인 영국의 배를 터는 사략선(국가 공인 해적) 선장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더비는 러시아와 인도ㆍ중국 항로를 개발하며 부를 더욱 늘렸다. 성조기가 최초로 달린 것도 그의 함선이다. 기업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백만달러라는 꿈의 재산’이 농업이 아니라 무역에서 형성됐다는 점은 수많은 기업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미국의 수출은 갈수록 늘어났다. 때문에 더비는 ‘무역 왕’으로 불렸다. 너대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 글씨’의 첫 머리에는 무역 왕 더비(King Durby)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무역왕으로 불릴 만큼 더비는 예기치 않았지만 농업국가 미국을 무역국가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사람이 부럽다. /권홍우ㆍ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