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은퇴, 부부의 새 삶을 위한 선물

끝나버린 직장생활 끝내주는 노후생활






SetSectionName(); [리빙 앤 조이] 은퇴, 부부의 새 삶을 위한 선물 끝나버린 직장생활 끝내주는 노후생활 정민정기자 jminj@sed.co.kr 그래픽=이근길기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2','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3','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4','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5','default','260'); 『 지난해 대기업 전무로 은퇴한 김인식(57) 씨.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해 왔고 친구도 많았던 김 씨는 은퇴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아내는 그가 집에 있건 없건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 봉사나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느라 바쁘고 하나뿐인 딸은 해외 유학중이라 1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다. 가능하면 아내와 생활 패턴을 맞추려고 해 보지만 뭔가를 함께 했던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어색하기만 하다. 김 씨는 "나이 들어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될 줄 알았으면 진작 아내에게 잘 해줄 걸 하는 후회도 든다"며 "신문에서 황혼 이혼 기사를 볼 때면 뜨끔해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지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 아내도 할 말이 많다. 그는 "젊었을 땐 집안 일은 나 몰라라 하다가 이제 끈 떨어진 신세가 되니까 집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냐"며 "솔직히 이혼하고 속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지만 딸이 아직 결혼을 안 한 처지라 참고 있는 것"이라며 쌓인 원망을 숨기지 않았다. 올초 취업포털 '커리어'가 정리한 신조어ㆍ유행어 가운데 '은퇴 남편 증후군'이 포함돼 있다. 주부들이 실직 또는 퇴직한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적ㆍ육체적 이상을 겪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베이비붐 시기인 1947~50년에 태어난 단카이(團塊)세대의 정년 퇴직이 본격화한 2007년 이전부터 이런 말이 유행했다. 은퇴 후 집에서만 지내고 아내 주위만 맴돌며 귀찮게 하는 남편을 신발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낙엽에 빗대어 '젖은 낙엽'이라 부르기도 하고 '와시모족(여보 나도족)'이라 칭하기도 한다. 고도성장의 주역으로 일밖에 모르던 단카이 세대 남성들이 퇴직후 남아 도는 시간을 주체할 줄 몰라 무조건 아내에게 기대는 현상이다. 이런 남편 때문에 행동의 자유도, 마음의 여유도 빼앗긴 아내들 중에 남편 얼굴만 봐도 속이 불편하거나 목소리나 발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우울증, 불면증 등을 겪는 경우 은퇴 남편 증후군이 의심된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도 내년부터 본격적인 은퇴기에 돌입하면서 일본과 같은 현상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은퇴는 개인뿐아니라 한 가정 내에서도 중요한 '사건'이지만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로서는 경제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의 단카이세대가 총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인데 비해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총 인구의 15%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더욱이 가장의 은퇴가 은퇴 남편 증후군이라는 주부들의 건강 문제로만 그치지 않고 황혼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통계청이 내놓은 '2008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이혼건수는 2007년 여성 1,427건, 남성 3,622건으로 10년 전보다 각각 5.8배, 4.2배나 증가해 심각성을 뒷받침해준다. 노후 생활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노후자금을 준비하듯이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어떻게 삶의 활력을 유지하며 건강한 심신으로 살아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기 정년 붐으로 요즘 직장인들의 평균 퇴직 연령은 53세(통계청 집계)인데 비해 평균 수명은 80세에 달하니 '포스트 은퇴'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노년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드바이저 인사이트사의 미치 앤서니 사장은 '은퇴 혁명'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할 때에만 늙은 것이다"라며 "인생 후반부에 대한 가장 큰 공포와 불안감은 사회보장제도의 소멸이나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상실하거나 의미 있는 일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주 리빙앤조이는 은퇴를 앞두고 막연한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 부부들에게 은퇴 후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선배 부부들의 조언을 전한다. 선배들은 과감한 성 역할 및 인식 전환과 함께 부부가 손을 맞잡고 남은 삶을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천해가는 애정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부야말로 생애를 통틀어 가장 믿음직한 친구이자 동지이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여행·봉사·공부… 제2의 삶에선 '영원한 현역' ● 은퇴 앞둔 부부를 위한 조언 은퇴자들은 수 십 년간 매일 출근하던 직장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현실에 아파한다. 또 주체할 수 없는 많은 시간에 버거워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보람을 느끼고 부부간의 애정을 돈독하게 다지며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수종 희망제작소 전문위원은 저서 '고마워라 인생아'에서 "우리나라 퇴직 세대는 '은퇴의 개념' 혹은 '은퇴의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시대 변화에 발맞춰 스스로 변화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절대 '은퇴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정년이 있는 직장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곧바로 다른 일이나 새로운 취미를 찾아 몰두하면 평생 '현업'처럼 생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가는 문(김동선의 '은퇴후 희망설계')이라는 공감대 아래 은퇴 후 아름다운 황혼을 꾸려가고 있는 부부들을 만나봤다. ■ 함께 여행 떠나니 즐겁고 행복합니다 '여행은 정신이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과 같다'고 한 안데르센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여행이 주는 유익함은 끝이 없다. 특히 평생 동반자인 부부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정신적, 육체적 밀착을 더해주기 마련이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를 지낸 이구철(74) 씨와 이강희(72) 씨 부부는 미국 유학 시절에 결혼해 여행을 자주 다녔다. 특히 3여년 전부터는 자전거 여행에 푹 빠졌다. "2001년 은퇴하고 나서 집 근처 산보를 다니다 보니 자전거가 걷는 것만큼 운동이 되고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도전했어요. 그런데 타기 불편하고 힘들어 이내 그만뒀다가 어느 날 뒤로 기댄 채 편안하게 탈 수 있는 3륜 자전거를 보게 됐어요. 그런 자전거를 찾다 강남구청에서 리컴번트 자전거 강습을 한다는 플래카드를 보고 처음 배웠죠." 기댄, 가로누운이라는 뜻처럼 리컴번트(Recumbent) 자전거는 누운 자세로 타는 자전거를 말한다. 이 씨는 그 때부터 부부가 편하게 탈 수 있는 리컴번트 자전거를 찾다가 '그린스피드 GT5 시리즈2'라는 자전거를 발견, 호주 본사에 이메일을 보내 직접 의뢰했다. 기존 제품에 내장 기어와 편한 시트가 달린 맞춤 조립을 부탁했고 이 씨 부부는 주문한 자전거를 픽업하기 위해 간 미국 LA 지역에서 처음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지난 해 가을에는 신혼 때 가서 감명받았던 오레건 주 크레이터 호수 근처를 여행했다. 요즘은 부부가 미니벨로에 푹 빠져 영국 브랜드인 브롬튼을 구입해 집 근처를 다닐 때마다 타고 다닌다. "자전거 여행 얘기를 하면 친구들이 다 놀란다"는 이 씨는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부부가 공동의 취미 활동을 찾아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이렇게 말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노년기를 '실버 세대'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골드 에이지'라고 부른다. 은퇴를 하면 이 전의 바쁘고 번잡한 삶에서 해방돼 자유롭게 되니까 '인생의 황금기'라고 볼 수 있는 거다.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개개인의 취향이나 여건에 따라 다르지만 무궁무진할 것이다. 특히 부부가 함께 좋아할 수 있는 공동의 취미 활동을 찾아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5년여전 한 언론사를 은퇴한 이정훈(62) 씨는 은퇴 직후 30년간 살았던 서울을 떠나 경기도 파주로 이사했다. 아들, 딸들이 결혼하고 막내도 대학을 졸업하면서 굳이 서울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 지난해에는 아내와 함께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로, 올해는 호주와 스리랑카, 일본 홋카이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와의 여행은 바늘 가면 실 가듯 늘 함께 하는 것"이라는 그는 "여태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고 그 안에서 새로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은퇴 이후 여행을 떠나는 부부들이 늘어나면서 한 여행사는 지난 4월 유럽 지역으로 부부가 함께 떠나는 상품을 내놓아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나투어의 '유럽으로 떠나는 행복한 회갑 여행'은 지금까지 5차례에 걸쳐 진행됐는데 런던, 파리, 스위스, 이탈리아 등 4개국 9일의 일정이었다. 특히 스위스 인터라켄 지역으로 들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휴양지 몽트뢰를 관광했을 땐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다고. 인솔자인 노은영 씨는 "은퇴 이후 부부가 함께 여행을 온 고객들이 많았는데 다들 여태까지 열심히 살아온 보람이 있다며 앞으로 더 자주 부인과 함께 여행을 다니겠다고 결심을 하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상품은 부부의 애정을 확인시키는 데 중점을 둬 '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부르거나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게 그날의 미션으로 주어졌는데 다들 처음에는 겸연쩍어 하면서도 나중에는 경쟁이라도 하듯 애정 표현을 했다고 전했다. ■ 봉사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을 돕는 것 봉사 활동은 사회에 참여하는 또 하나의 기회라는 점에서 다른 세대와 화합하고 교류하는 사회통합이기도 하다. 워싱턴포스트지에 따르면 봉사활동이나 기부 행위 등은 뇌 전전두엽 피질을 활성화시켜 그 자체로도 기쁨을 준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나와있다. 경남 산청에서 고등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다 2007년 말 은퇴한 최종수(59) 씨는 부인 송점둘(55) 씨와 함께 2004년부터 플랜코리아를 통해 베트남에 사는 팜 트렁(11) 군을 후원하고 있다. 후원을 시작한 이듬해인 2005년과 지난 해 두 차례 트렁 군의 가정과 학교를 방문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3대가 한 집에 살고 있었어요.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란 트렁 군을 보면서 내가 아빠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너만 열심히 하면 내가 대학까지 보내주겠다니까 아이 눈망울이 촉촉해져서 품에 안기더군요." 최 씨는 "나이가 들면서 내겐 나눔이 삶의 중요한 목적"이라며 "나누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면 인생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굿네이버스가 운영하는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에는 일흔이 넘은 부부 봉사자가 있다. 신현부(77) 방화3동 노인연합회 회장과 조동순(71) 카네이션 봉사대 회장이 주인공. 노인연합회는 독거노인과 저소득가정을 위한 봉사 활동으로 계절마다 떡국나눔, 송편 나눔, 김장 나눔 등을 펼치고 있으며 여성 어르신으로 구성된 카네이션 봉사대는 주 1회 지역내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밑반찬을 지원한다. 건설 업체에서 근무하다 15년 전 퇴직했다는 신 씨는 은퇴 후 5년은 여행이나 하면서 보내다 우연한 기회에 15개 노인정을 결속해 노인연합회를 결성했다. 신 씨는 구립어린이도서관에서 전통문화체험교실 교장도 맡아 아이들에게 사방치기, 팽이 돌리기, 굴렁쇠 굴리기 등 10여가지의 전통놀이를 가르치고 학교 일일 교사 역할도 한다. 특히 봉사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30여명의 어르신들이 봉사하는 국수 가게 '동화마을 잔치국수'도 연다. 조 씨는 "봉사는 남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돕는 것"이라며 "봉사 활동을 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져 자식들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반문했다. 김일용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장은 "노후의 자원봉사 활동은 젊은 시절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심신의 건강을 유지시키고 즐겁고 보람된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인 동시에 젊은이나 동년배에게 아름다운 황혼의 모습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환갑이 넘어도 배우는 건 즐거운 일! 흔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워너 샤이는 건강한 성인들은 대부분 60세까지 정신 능력이 거의 손상되지 않으며 70대엔 지적 능력이 조금 감소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서 만난 권준택(70), 이영희(65) 씨 부부는 은퇴 이후의 삶을 다양한 문화 예술을 접하고 공부하며 보내고 있다. 목장 경영을 30년이 넘게 해 온 권 씨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해 온 이 씨는 10여년 전 문득 남은 생은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이들 부부가 일생 동안 꼭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것과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적인 충족감을 느끼는 것. 그래서 이번 학기에 선택한 수업이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조희창 교수의 '클래식 플러스'다. '레코딩의 역사와 불멸의 거장들'이라는 주제로 레코딩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하면서 전설로 남은 명인들과 현대의 거장 연주자들의 세계를 조망해보는 시간인데 이 씨는 "거장들의 음악 세계와 인간적 면모를 그들이 남겨 놓은 명반 및 희귀 동영상 자료들과 함께 감상하는 게 참으로 즐겁다"고 전했다. 여행을 떠날 때도 주제를 갖고 간다고 한다. 1남 2녀 중 큰 아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근무하고 있고, 둘째 딸은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어 이미 미주와 유럽은 여러 번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들 부부는 여행을 다닐 때도 지역의 아트 뮤지엄이나 미술관 순례를 주제로 행선지를 선택한다고 한다. 예컨대 몇 해 전 미국 서부 여행 때는 스프링필드, 시카고, 클리브랜드, 디트로이트 등 10곳이 넘는 대도시의 아트 뮤지엄을 순례했으며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도 오르세미술관, 루브르미술관, 브루델미술관, 그랑팔레 등 거장들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전시된 미술관 순례에 나섰다고 한다. 권 씨는 "해외에 나가면 지역의 명소들을 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처럼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미술관 여행만 다녀도 즐겁고 유익하다"며 "요즘은 국내에도 대가들의 작품들이 자주 들어와 덕수궁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을 다니고 올해는 르느와르전, 구스타프 클림트전, 페르난도 보테르전 등을 빼놓지 않고 다 봤다"고 전했다. 이 씨는 "서로의 공통 관심사를 찾고 이를 함께 하려고 노력하면 정신적으로 충족될 뿐만 아니라 나이보다 더 젊게 살면서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 있는 아들, 딸과의 연락 수단으로 오래 전부터 인터넷 화상 채팅을 사용해 왔다는 권 씨는 "정보기술(IT)의 발전 등 사회가 진보하면 할수록 사회의 변화 속도에 뒤쳐지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배우려는 자세도 정말 중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얼마 전엔 백발이 성성한 60~70대 남녀 20여명이 무대에 올랐다. 충무아트홀이 주최한 어르신 연극교실 '우리는 실버파워' 5기 멤버들의 발표 공연으로 노년의 시선으로 인생 이야기를 풀어간 연극이었다. 이 가운데 이문기(69ㆍ전 연세대 전자공학과 교수) 씨와 심성식(65ㆍ전 이화여대 가정학과 교수) 씨 부부가 각각 실직한 남편의 역할과 이혼녀의 역할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10여년 전부터 부부가 함께 스포츠 댄스 등을 즐기며 은퇴 이후 부부의 삶을 일찌감치 준비했다는 이들 부부는 3년 전 이 교수가 정년 퇴임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 봄 우연치 않게 어린이문화예술학교가 내건 실버 연극단 모습 공고를 보고 연극에 도전하게 된 것. 심 씨는 "그 동안 둘 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내면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억누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연극을 하면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다 보니 자꾸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 말했다. 특히 10여년 전부터 1주일에 두 번씩 부부가 함께 스포츠 댄스를 배우고 있다는 심 씨는 "대부분의 부부들이 각각 따로 노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항상 같이 다니고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고 있다"며 "은퇴하기 훨씬 전부터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0여년 전 관우회(관세청 퇴직자들의 모임으로 현재의 관세무역개발원)에서 정년 퇴직한 김광석(67) 씨와 부인 박명자(62) 씨 부부는 요즘 아코디언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안산문화원이 지난해 9월 마련한 '아코디언으로 수놓는 은빛 추억'이라는 수업에서 아코디언을 배워 솜씨를 뽐낼 정도가 됐다. 박 씨는 "문화원에 아코디언 강좌가 개설됐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처음에 이 양반은 남자가 무슨 악기냐며 손사래를 쳤다"며 "그런데 지금은 누구보다 아코디언을 좋아하고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악기라는 게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도 많아 용기를 내서 강좌 신청을 했다"며 "어렸을 적 장터에서 듣곤 했던 아코디언은 음색이 부드러우면서도 애절해 한국 사람의 정서에 아주 잘 맞는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강습이 없는 날이면 집에서 한 사람이 아코디언을 연주하면 다른 사람이 듣고 틀린 부분을 고쳐주면서 지낸다고 한다. 아직 손주가 없는 김 씨는 "나중에 손주가 생기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직접 좋은 노래들을 연주해 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 씨는 "우리 세대는 여가 취미 활동이라는 게 없어서 미리 준비하지 못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본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은 만큼 은퇴 전에 미리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찾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박 씨는 "자식한테 얽매어 살기 보다는 젊을 때부터 자신을 위해 취미 생활도 하면서 보내는 게 좋다"며 "결국 이 나이 되서 돌아보면 자기 자신의 생활에 투자해야 친구도 있고 자식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최중석(63) 씨는 요즘 그림 작업에 한창이다. 퇴근 후나 여가시간엔 자택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순수 회화부터 꼴라쥬까지 다양한 작품활동으로 새로운 열정을 발견하고 있다.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아들과 막내딸, 서양화과 출신의 며느리는 좋은 조언자가 되어준다. 좋은 미술 전시회가 있으면 부인과 함께 관람하는 것은 그의 큰 즐거움이다. 최 씨 부부는 "나이가 들어도 몰두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며 "젊은이와 소통하는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일석이조인 셈"이라고 말했다. ■ 농사 지으며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귀농자가 2004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밝혔다. 은퇴자들 가운데서도 시골로 들어가 사는 귀농 부부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도시의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경북 울진군 불영사 계곡에서 '솔마음 농장'을 운영하는 홍순호(57)씨ㆍ전경희(49) 씨 부부는 KBS 프로듀서와 방邦方?출신이다. 1980년대 소 파동을 취재하면서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된 홍 씨는 IMF 외환위기가 터질 무렵 방송국을 떠났다. 99년부터 귀농본부에서 교육을 받고 살 만한 땅을 찾다 2000년 불영사 계곡 상류에 정착한 홍 씨는 "도시 일은 혼자 힘으로 가능한 게 많지만 농사는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하루 종일 함께 있으니 어떤 작물을 잘 키울 수 있을지 등 사업계획도 함께 세우게 된다"고 말했다. 전 씨는 은퇴자에게 귀농이 더 없이 좋은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이 들수록 처량해지는 도시의 남편들을 보면 불쌍할 때가 많았는데 농촌에선 남자들이 할 일이 많다 보니 남자들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되고 나부터도 남편이 일할 때 멋져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 교수로 정년 퇴직을 몇 년 앞두고 있는 박형식(60) 씨와 약사 일을 하고 있는 부인 김신자(56) 씨는 은퇴 후엔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기로 하고 요즘은 주말마다 귀농 준비로 바쁘다고 한다.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도에 농지 200평을 마련한 후 30년이 넘은 농가를 살기 좋게 보수하는 일에 한창이다. 학자다운 고집으로 서적을 기본으로 하는 농사짓기를 주장하는 남편과 마을 사람들과 친해진 아내의 귀동냥 경험치 농사법이 매번 충돌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평상시 각자 생활에 바빠 하루 1시간의 대화도 같기 어려웠던 이들 부부는 주말 내내 공통 주제를 가지고 하루종일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된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밭에서 수확하게 될 채소를 소비하기 위해 스스로 채식주의로 전환이냐, 내다 팔 것인가,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채소 봉사를 할 것인가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토론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박 씨는 "신혼 초를 제외하곤 치열한 삶 속에 묻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며 "함께 할 수 있는 노년을 위해 귀농을 생각했는데 이런 선택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앞으로의 30여년을 잘 보낼 수 있는 황혼의 에너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부부 성 역할 재정립도 필요 은퇴 부부들은 남편이 돈을 벌고 부인은 가사 일을 해야 한다는 고정된 성 역할 인식에서 탈피해 상대방의 성 역할을 경험해보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정훈-홍현숙 씨 부부의 경우 남편이 은퇴 후 남편이 가사 일을 거들어 주는 등 집안 일을 솔선수범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함께 장을 보기도 하고 한 사람이 식사를 담당하면 다른 한 사람이 청소를 하는 등 일을 분담하게 됐다는 것. 홍순호-전경희 씨 부부는 귀농 후 전 씨가 9월부터 초등학교 인턴교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농사를 짓고 아내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 씨는 "은퇴 후 농사일도 보람 있지만 오지마을 아이들에게 내가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기쁨"이라며 "남편도 내 일을 잘잘 이해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전업주부 박미숙(54) 씨는 남편이 은퇴한 후 일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남편과 함께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해 점심시간에만 집 근처 식당 일을 돕게 됐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돈을 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만 하다. 박 씨는 "몇 시간이라도 서서 일하니까 그동안 남편이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었는지도 새삼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은퇴 남편 유쾌하기 길들이기'(나무생각 펴냄)를 쓴 오가와 유리 씨는 은퇴한 남편이 스스로 점심을 챙겨먹는 등 남편을 자립적으로 '키운' 케이스다. 그는 "이혼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남편을 자립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며 "집안 일을 분담하니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없고 함께 여가를 보내는 시간도 더 늘었다"고 강조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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