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9년 2월 기업집단 내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효과적으로 단속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법원의 영장 없이 금융거래정보요구권(계좌추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했다. 공정위는 한번의 연장 끝에 오는 2004년 2월 끝나기로 돼 있는 계좌추적권을 3년 더 연장할 것을 목표로 법 개정 절차에 들어갔다. 공정위가 내부거래를 규제해야 할 타당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내부거래를 규제하게 된 경제적 논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기업이 기업집단보다 낫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논거는 공정거래법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이지 명시적인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의 책임이 기업집단에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이러한 논거는 공정위로 하여금 계좌추적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공정위는 계좌추적권을 이용해 기업집단 내 계열사간 거래를 차단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독립기업을 보호하고 기업집단을 억제 또는 와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독립기업이 기업집단보다 낫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약 그 주장이 옳다면 세상에는 독립기업만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립기업과 기업집단은 비록 일시적으로는 어느 한쪽의 부침이 있었지만 병존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부거래를 규제하게 된 두번째 이유는 전문화가 다각화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앞의 논거와 연관돼 있다. 내부거래를 통해 다각화된 계열사를 지원하고 그러한 지원은 해당 계열사를 살아남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문화가 다각화보다 좋다는 선험적 판단은 틀린 것이다. 일본 소니는 게임기를 만들어 히트를 쳤고 영상사업에 진출했던 적도 있다. 미국의 GM은 근래 자동차 제조에서보다 자동차 할부 금융에서 더 많은 이윤을 내고 있다고 한다.
내부거래를 통해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공동으로 극대화하기보다는 자신에게는 유리하지만 소액주주에게는 불리한 결정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행위는 내부거래를 이용해 대주주가 소액주주를 약탈하는 것이다. 기업집단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가는 엄청난 노력으로 현재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만약 그가 그런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를 한다면 자신의 노력을 일거에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할 가능성은 결코 크지 않다. 다만 외양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경우라도 외부 관찰자가 알 수 없는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또 그런 결정은 단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을 공동으로 극대화할 수도 있다. 즉 그런 결정의 외양보다는 내용을 잘 살펴서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극히 예외적으로 그런 약탈이 내부거래를 통해 실제로 일어난다면 범죄자만 처벌해야지 내부거래를 규제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어떤 방법이 범죄에 악용된다고 해서 그것을 금지한다면 거래를 통해 부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길이 크게 차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탈의 경우 손해를 입은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공정위가 나설 일은 아니다.
내부거래를 통해 계열기업이 아닌 다른 독립기업을 배제함으로써 잠재적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내부거래를 규제해야 한다고 공정위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 경우 내부거래의 규제는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지 경쟁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은 후자이지 전자가 결코 아니다.
미국은 반트러스트법의 발상지이고 그 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반트러스트법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계약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계열회사간 내부거래와 기업 내 내부거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재산을 자신의 의지대로 처분하도록 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근본 중의 근본원칙이다. 내부거래 규제는 이러한 근본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입힌다는 증거가 없는 한 어떤 거래라도 허용돼야 한다. 그것은 민법의 기본원리와도 일치한다.
내부거래를 규제하는 것은, 그래서 계좌추적권을 허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모두 타당하지 않다. 입법가들의 현명한 판단만이 기업을 불필요한 규제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용덕(대구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