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새로운 선박 수요자 생겨 시장 활성화 기대"

해운업에 8조7,000억 투입 "연착륙 유도"
"모든카드제시" 불구 "지원규모 턱없이 부족하다" 지적도
"선박금융 정착·용대선 거래 투명화 등 근본대책 있어야"

23일 과천청사 제1브리핑룸에서 최창현 국토해양부 제2차관이 해운산업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동호기자


국토해양부ㆍ기획재정부ㆍ금융위원회 등 세개 부처가 힘을 합쳐 완성한 '해운사업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방안'은 정부로서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다 내놓은 안이다. 당초 일정보다 2주 가량 늦춰가면서 해운업의 복잡한 구조를 해석한 후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구조조정안과 지속적으로 성장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경쟁력 강화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현재로서 제시할 수 있는 대책들은 모두 포함했다"며 "선박시장에 새로운 매수자가 등장해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란 신호를 보내준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가 강조하듯이 이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대책과 함께 반복되는 해운업의 위기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방안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후속조치와 대책을 추가해 모자란 부분을 채울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 ◇선박펀드 조성, 선박시장 활성화 예고=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방안 중 가장 직접적인 대책은 '3조~4조원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해 중고 선박을 매입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기금 설치를 위한 캠코법 개정안 통과가 선행돼야 하는 만큼 오는 6월 이후에야 출범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시장이 거는 기대는 크다. 한 채권은행의 관계자는 "시장에는 배를 팔겠다는 공급만 있고 사겠다는 수요가 없었는데 새로운 선박펀드의 등장으로 거래가 늘고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생겼다"며 "시장가격에 물건을 팔 곳이 많을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팔고자 하는 해운사는 사줄 곳이 생겼고 거래가 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선박펀드가 나갈 길이 순탄하지 만은 않다. 배 소유주가 해운사ㆍSPC(특수목적회사)ㆍ캐피털 등 다양하고 선박금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배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가보다 더 큰 규모의 선박금융이 붙어 있을 경우 은행들이 손해를 보면서 배를 팔 가능성은 낮다. 선박펀드가 매수할 배가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박금융 1조원은 코끼리 비스킷=정부는 건조 중인 선박은 매입하지 않고 제작금융(조선사 지원)과 선박금융(해운사 지원)을 지원해 완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수출입은행을 통해 배를 만들고 있는 조선소에 3조7,000억원, 배를 주문한 해운사에는 1조원가량을 빌려줄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규모가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에서 제작 중인 배만 해도 규모가 엄청 나고 대출을 필요로 하는 선박금융 수요도 지난해 말 현재 100억달러, 13조원가량에 달한다. 또 선박금융을 받기 위해선 선수금환급보증(RG)이 발급돼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 지원을 필요로 하는 곳 중에서 실제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 것인지도 관건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조선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규모가 전체적으로 턱 없이 부족하다"며 "구체적인 것은 봐야 하지만 실제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선박금융 활성화, 투명한 용대선 거래 등 근본대책 필요=20여년 전 정부는 '해운합리화 조치'를 단행했다. 지난 1982년부터 시작된 해운시장 불황으로 중소 해운업체가 도산하자 과당경쟁을 막고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66개 해운사를 20개 그룹선사로 통폐합했다. 하지만 20여년 후 해운업은 다시 불황을 맞았다. 해운사들이 자금조달이 쉬운 호황기에 주로 선박을 확보하고 불황기에는 선박금융이 위축되는 악순환 구조가 반복되면서 해운업 불황도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업은 가파른 성장을 하면서 시장점유율 3.6%인 세계 6위 해운강국이 됐다. 독일(9.3%)의 3분의1이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선박금융은 한참 뒤처져 있다. 2004년 선박투자회사가 도입된 후 약 5조원가량이 조성돼 98척을 확보했다. 이는 금액기준으로 독일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때문에 해운사들은 선박금융 활성화를 통한 저비용의 선대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번에도 문제가 됐던 투기적 용대선(배를 빌리고 빌려주는 것)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도 절실하다. 정부는 무등록 용대선 실태를 조사해 위반사항에 대해선 사법조치해 해운질서를 확립하고 구조조정과 관련해 부실 가능성이 있는 용대선을 조기에 정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용대선 비중이 과다할 경우 톤세 적용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대선 거래관행을 투명하게 개선하기 위한 대책은 빠져 있다. 용대선 계약의 거래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여러 단계를 거쳐 용선이 발생하고 문제가 터지면 해결이 힘들게 된다. 선사 간 용선거래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도 절실한 상황이다. 때문에 선박중개거래소를 설립하거나 일정 자격을 가진 업체만이 선박중개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인증제 도입 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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