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 개발된 대표적인 1세대 정신분열병 약 ‘할로페리돌’과 최신 2세대 약물 ‘팔리페리돈’의 분자구조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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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정신분열병학회는 ‘정신분열병’이라는 질환 명칭이 환자와 일반인에게 거부감을 주고 적극적인 치료를 저해한다는 지적에 따라 개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정신분열병 약물을 최초로 개발한 다국적제약사 얀센의 창업주 폴 얀센의 생전 모습. <사진제공=한국얀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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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병’ 또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질환 이름이 조만간 사라질 전망이다.
대한정신분열병학회가 환자에게 거부감을 주고 일반인에게 편견을 유발, 적극적인 치료를 저해하고 있다며 질환 및 학회 이름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이 분열됐다’는 표현으로 인해 정신분열병을 ‘제 정신이 아닌 미친 상태’ 또는 ‘귀신들린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한정신분열병학회 권준수 부이사장(서울의대 정신과 교수)은 20일 “정신분열병 개명을 위한 연구사업이 진행 중이며, 이르면 올 가을께 결과가 나오는 대로 검토를 거쳐 1~2년 안에 병명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 부이사장은 “현재 의견을 수렴 중인 만큼 어떤 명칭이 유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개명이 확정되면 우선 학회 이름부터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회 측은 올해 안으로 개명 검토를 끝내고 내년부터 보건복지가족부와 병명 개정을 위한 협의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정신분열병 환우가족모임은 이미 병명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개명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정신분열병 치료약물이 국내 처음 도입된 1950년대 이후 60여 년간 사용되어 온 정신분열병이라는 질환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통합실조증' '브로일러씨병' 등 거론=정신분열병을 대체할 질환명으로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것은 통합실조증, 브로일러씨병, 도파민항진증 등이 있다. 정신분열병(증)은 미국의 ‘schizophrenia’를 정신분열증으로 해석한 일본의 용어를 그대로 따라한 것인데 일본은 이미 지난 2005년 ‘통합실조증’으로 병명을 개정했다. 통합실조증은 몸과 마음이 통합이 안되고 조화로움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홍콩에서는 생각이 조화가 안된다는 ‘사각실조증’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정신분열증을 처음 연구한 학자의 이름을 딴 브로일러씨병, 원인이 되는 신경전달물질 이름을 넣은 도파민항진증 등도 유력한 후보다.
연세의대 정신과 민성길 교수는 “보통 범죄사건 언론보도를 보면 정확하지도 않은데 범인이 정신분열병 환자라고 나올 때마다 질환자들이 본의 아니게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며 “실제 정신분열병 환자의 범죄율은 매우 낮으며 이 같은 편견을 줄이기 위해서도 병명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기 치료해야 뇌기능 저하 막아=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정신분열병 유병률은 약 1%(4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과반수 정도만이 제대로 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첫 발병은 고등학생 시기 등 20대 전후에 많이 발생하지만 정신분열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 등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기치료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병명이 개정되면 질환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줄어들고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이뤄질 것으로 학회 측은 기대하고 있다.
권 교수는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신분열병의 ‘증상이 생기고 난 이후 치료받기까지의 시간(DURㆍDuration of Untreated Psychosis)’이 짧을 수록 뇌기능 저하를 줄 일 수 있고 치료결과도 좋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증상이 예상되면 즉시 병원에 와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민 교수도 “고등학생 때 첫 발병하는 경우가 많지만 부모들이 성적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치료를 꺼리는 경향이 많다. 방치할 경우 오히려 성적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초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정신분열병을 암시하는 초기증상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신분열병의 경우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ㆍ우울증 등과 달리 자가진단이 어렵다고 말한다. 다만 대인기피증상, 성적 또는 생산성의 급격한 저하, 불면, 불안초조증상 등이 정신분열증의 조기증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신분열병에 걸리면 망상과 환청이 들리고 말이 안되는 얘기를 하며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워진다. 이 같은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정신분열병으로 판정한다.
◇치료약물 복용기간 늘리는 추세=정신분열병은 한 번 발병하면 보통 2년간 치료약물을 꾸준히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치료기간을 더욱 길게 잡는 추세다. 권 교수는 “첫 발병 후 증상이 좋아지면 약물을 끊은 환자들의 경우 80% 이상이 1년 안에 재발한다”며 “부작용이 적고 지속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이 출시되고 있기 때문에 약 투여기간을 좀더 길게 잡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정신분열병의 약물치료가 시작된 것은 다국적제약사 얀센의 창업주인 폴얀센(1926~2003) 박사가 1958년 환각을 일으키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분비를 억제하는 ‘할로페리돌(제품명 할돌)’이라는 치료제를 개발하면서부터. 이어 90년대 접어들어 ‘리스페리돈’ 등 부작용은 줄이고 효과는 증대시킨 2세대 약물이 개발되면서 약물치료가 본격화됐다.
국내에서도 최신 정신분열병 치료제인 팔리페리돈(제품명 ‘인베가’) 성분 약물이 지난해 말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고 출시를 준비 중이다. 이 약물은 1일1회(기존 약물은 1일2회)만 복용하면 약물의 혈중농도가 24시간 일정하게 유지돼 편리하다.
◇5년내 유전자 이용 맞춤약물 치료도 가능할 듯=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정신분열병은 유전병은 아니나 관련 유전자가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유전적 소인이 있는 질병’으로 분류되고 있다. 유전자가 100% 동일한 일란성 쌍생아의 경우 한 명이 정신분열병일 경우 다른 한 명이 병에 걸릴 확률은 약 48%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신분열병 치료방향은 유전자를 이용한 약물 치료가 대세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며, 유전자와 뇌영상을 이용한 조기발견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권 교수는 “개개인의 유전자를 파악해 약물의 효과와 부작용을 예측하는 맞춤형 약물치료가 이르면 5년 안에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들의 재발을 막으려면 약물치료는 물론 운동ㆍ신앙생활 등을 통한 스트레스 관리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환자를 배려하는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