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왕따

어느 단체가 초등학생을 상대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을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의 대답은 유괴범도, 강도도 아닌 「왕따(집단따돌림)」였다. 왕따가 무서워 수업시간에 질문도 꺼린다는 대답도 있었다.80년대 일본이 「이지메」로 골치를 썩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불구경하듯 했다. 하지만 이제 왕따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문제가 됐다. 왕따는 대개 비공식적인 리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조직내의 특정 리더나 그룹에 밉보이면 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되는 현상이 왕따는 당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재미」에 불과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피해가 심각하다. 이 형벌은 형기(刑期)도 없다. 자기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는 이 형벌은 당하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죽기보다 못하다. 그래서 왕따는 한 조직이나 사회의 발전에 최대의 걸림돌로 지목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왕따를 최근 또 한번 목격하게 된다. 그것도 국가의 최고 기관에서 말이다. 청와대는 오는 21일 구조조정 모범기업 오찬모임을 예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날 모임의 초청대상 64개 기업 중 실적이 부진한 7~8개 업체를 초청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 안들은 기업들을 왕따시키겠다는 것이다. 제외된 기업들은 정부가 제시한 연내 부채비율 200%를 지키지 못했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하지 못한 곳 들이다. 이번 회동에 초청장을 받지 못한 기업들에 돌아갈 불이익은 예상 외로 클 것이다. 그것도 당사자가 국가 최고기관이기에. 해당기업들은 벌써부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은행이나 관련 업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그 여파는 주식시장으로까지 이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해당기업들은 차라리 금융제재나 민·형사상의 처벌을 내려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법에도 없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고육책이 아니고선 달리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왕따가 생길 수 있는 관료주의적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는데 있다. 잘 한 기업이나 단체를 불러 「격려」하고 이렇게 불려갔던 기업은 「위세」하는 구시대적 전통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정부로 부터 미움을 샀다는 이유로 따돌림하는 것은 친구를 왕따시키는 초등학생과 무엇이 다른가. 세계는 지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로 일을 하라』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아직도 이런 구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장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새 천년이 불과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부푼 희망으로 맞이 새천년에 가장 먼저 「구조조정」해야 할 용어는 바로 왕따다. BHM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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