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로 살래, 영웅으로 죽을래?" 1930년 대공황 시절 미국을 흔들었던 갱스터 '존 딜린저'는 은행 금고 앞에서 은행장에게 총을 겨눈 채 이렇게 말한다. 겁에 질린 은행장은 금고 문을 열어주고 딜린저는 이렇게 13개월간 미국 전역 11개의 은행을 털어 시대의 '영웅'이 됐다. 존 딜린저는 대공황 시대 경제 불황의 원인으로 지탄받던 은행을 터는 대신 어려운 시민들의 돈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켜 이른바 '총을 든 스타'로 불리기도 했다. 23살에 식료품점을 털다 10여년의 복역생활을 했던 그는 1933년 5월 출소하자마자 5개의 은행을 털었고, 이후 2차례 검거됐다가 탈옥하길 반복해 미국 역사상 최초로 '공공의 적(public enemy)'이 된다. 할리우드는 이미 '영웅으로 추앙 받던 범죄자'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수차례 영화화했다. '히트'와 '콜래트럴' 등 갱스터 영화를 연출해 온 마이클 만 감독은 존 딜린저의 이야기를 미화하거나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영화에 작위적으로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디지털 필름으로 찍어낸 건조하고 거친 총격신과 배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카메라를 통해 딜린저 및 주변인물들의 내면을 그려내 '감성적인 갱스터 영화'를 만들어냈다. 캐리비안의 해적' 조니 뎁이 전설적인 영웅 '존 딜린저'로 돌아왔고 '다크나이트', '터미네이터4'의 크리스천 베일이 그를 쫓는 FBI수사관 멜빈 퍼비스 역할을 맡았다. 영화는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이라기보단 블록버스터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크리스천 베일이 훌륭한 조연으로 받쳐주면 그 무대를 조니 뎁이 매력적으로 활보하는 형국이다. 인질로 잡은 여성을 나무에 묶으면서 추울 것을 염려해 코트를 벗어주는 매너를 보이고 검거되는 상황에서도 검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농담을 하는 여유가 있었던 존 딜린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더 빛나게 연기하는 배우 조니 뎁을 통해 재현됐다. 결말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스릴 넘치진 않지만 실제 은행 강도를 기술 고문으로 고용해 은행 터는 장면을 만들고 딜린저 일당이 도주에 사용하던 차량과 무기를 활용하는 등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충실했기에 사실적이고 현장감이 넘친다. 완벽한 시대상황 재연과 강약이 조절된 총격신, 배우들의 호연은 올해 개봉한 할리우드 작품 중 단연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