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사람과 풍경을 빚어내는 조각가 지명순의 세번째 개인전이 모란갤러리에서 오늘부터 열린다.
테라코타(흙으로 빚어 초벌구이 한 조각)기법으로 올해 제작된 작품 20여점이 선보인다. 특히 재벌구이 과정에서 연기로 거슬려 새카맣게 색을 입히는 ‘라꾸(raku)’ 작업으로 마무리 한 이색적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라꾸는 붉은 흙빛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테라코타 기법 중 하나.
그가 흙으로 빚어낸 사람과 풍경은 언제나 그렇듯이 수더분하고 따스하다. 그러나 웃음 뒤에 가려진 외로움과 상처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처절한 외로움이나 치유 불가능한 정도의 상처는 아니다. 사는 동안 누구나 겪게 되는 고독ㆍ무관심ㆍ외로움에 대한 단상이 손 맛 살아있는 흙 작업으로 살아났다.
유년의 기억이나 풍경 등 과거를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이 이번 전시에선 현재까지 넓어졌다. 전작들에선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둔 흑백 사진 속 풍경을 연상시켰다면, 근작에선 어느 길목에서건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단편적으로 기록하며 우리네 삶으로 바짝 다가왔다.
작가는 여느 골목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일상성을 유쾌하게 표현해냈다.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듬직한 몸매를 내 밀고 있는 중년여성을 묘사한 ‘마흔둘’은 꽃다운 시절에 대한 미련이나 서글픔보다 강인한 생활력을 느낄 정도로 현실적이다. 코고는 남편과 벽쪽으로 돌아누운 아내를 빚은 ‘침대’는 연인들의 열정보다는, 평범한 삶의 미학이 묻어난다. 벤치 위에 앉아있는 무심한 표정의 할머니 표정은 고독해 보이지만 그것마저 익숙해져 친근하기까지 하다. 이 모든 사람들을 만날 것만 같은 ‘동네’는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풍기는 삶의 향기가 가득하다. 전시는 27일까지. (02)737-0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