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루이스 보르헤스는 「상상동물 이야기」에서 북유럽 바다에 산다는 괴수 크라켄(용 또는 이무기의 일종)에 대해 테니슨의 시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천둥 치는 듯한 파도 아래, 저 깊은 바닷속에서 크라켄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랫동안 꿈도 없는 달콤한 잠을 자고 있다. 거대한 새끼 때부터 최후의 심판의 날, 불길이 뜨겁게 데울 때까지 잠든 채 누워 있을 것이다.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면, 단 한 차례 인간과 천사에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울부짖으며 솟아오를 것이다. 그러나 수면에 올라오는 순간 곧바로 최후를 맞이 할 것이다.」
여기에서 크라켄, 곧 이무기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사악한 마성을 상징한다.
서양에서는 이처럼 용은 사악함과 저주스런 힘의 대명사이다. 때문에 용을 퇴치하는 전설이 많이 전래되어 온다. 「성(聖) 조지의 악령 토벌」과 같은 전설이 대표적이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같은 전설에서의 용을 혼돈의 극치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양에서 살고 있는 용은 다른 대접을 받았다. 용은 비늘을 가진 360종류의 짐승 가운데 으뜸으로 대표적인 영물이었다. 중국에서는 기린·봉황·거북과 함께 용을 길조를 나타내는 사령(四靈)의 하나로 꼽았다. 우리 민화에서도 용은 기린, 호랑이, 해태 등과 함께 영물로 꼽혀, 용 그림은 「영수화(靈獸畵)라고 하여 특히 인기가 높았다. 용이 사악한 기운을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용은 또 천자와 비교되어, 임금이 입는 옷은 용포(龍袍), 의자는 용상(龍床), 얼굴은 용안(龍顔)이라 했다. 때문에 신라 문무왕은 죽어서도 해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동양에서의 용은 종류도 많아 물이 가물면 비를 내리게 하는 응룡(應龍)을 위해 용신제를 지내기도 했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석룡, 울기를 좋아하는 명룡(鳴龍)이 있는가 하면 용이 되기 직전의 이무기는 교룡(蛟龍)이라 불렸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용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 예사롭지 않은 꿈을 꾸면 「용꿈을 꾸었다」며 좋아했다. 특히 올처럼 경진년(庚辰年) 즉 용의 해를 맞이해서는 사람들은 누구나 용이 내뿜는 상서로운 길운이 자신을 보호할 것으로 기대해보기도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IMF(국제통화기금) 시대를 청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2000년을 맞이해 동양의 기운이 서양의 기운을 물리치는 원년을 기대해봄직도 하다. 서양에서 용은 사악한 기운을 뜻하지만 동양에서는 오히려 사악함을 쫓아내는 벽사( 邪)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IMF 금융통치 하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모든 사람들이 부디 용꿈을 꾸는 행운 속에 경진년을 보낼수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