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시장을 둘러싼 삼성-롯데가(家)의 전쟁에서 이부진(40·사진) 호텔신라 전무가 한판승을 거뒀다. 대표 명품중 하나인 루이비통 면세 매장 유치를 놓고 유통공룡 롯데와의 일전에서 올린 승리다. 루이비통은 전세계 공항 가운데 처음으로 인천공항 신라면세점에 입점한다.
지난달 30일 호텔신라는 “방한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회장과 인천공항 면세점에 매장을 열기로 합의했다”며 “루이비통의 공항 영업 개시 시기는 내년 하반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루이비통이 공항 면세점에 입점하는 것은 160여년의 브랜드 역사상 인천공항이 최초다.
루이비통이 사업 파트너로 신라면세점을 선택하면서 공항 입점을 둘러싸고 국내 양대 면세점 사업자인 호텔신라 면세점과 호텔롯데 면세점이 벌여온 3년간의 줄다리기도 신라 측 승리로 판가름 나게 됐다.
두 업체는 국내 매출 1위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인천공항 입점 여부를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특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전무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면세점 사장(롯데쇼핑 사장겸임) 모두 실질적으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데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양 업체를 대표하는 ‘재벌가 딸들의 면세점 전쟁’으로 해석돼 왔다. 실제 지난 4월 아르노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이 전무는 그를 만나러 직접 인천공항으로 찾아갔었으며 이날 아르노회장이 입국한 후에도 그와 회동했다.
앞서 지난해 말 애경그룹의 AK면세점 인수를 둘러싼 1차전에서는 롯데면세점 신영자 사장이 승리했다. 당시 신라면세점은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1위 자리를 롯데에게 내줘야 했지만 이번 루이비통 입점을 계기로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게 됐다. 국내 면세점시장에서 롯데면세점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43%(AK면세점 제외), 신라면세점은 25.5% 정도다. 롯데면세점이 크게 앞서고 있지만 인천공항의 점유율은 양 업체간 큰 차이가 없어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루이비통을 껴안게 된 쪽은 시너지가 기대된다.
특히 루이비통이 시내 면세점을 제외한 공항 면세점에는 입점한 적이 없었기에 전 세계의 이목까지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루이비통은 그동안 세계 유수 공항들의 입점 제안을 모두 거절해 왔으나 신흥국 시장의 부유한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해 이 같은 방침을 스스로 허물었다.
삼성그룹이 연말 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이부진 전무는 값진 성과를 이뤄낸 만큼 앞으로 그룹내 위상 강화가 예상되고 있다. 올해 전무 2년차인데다 삼성그룹의 ‘젊은 조직론’을 감안하면 올해 승진이 유력하지 않겠냐는 분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루이비통의 입점으로 인천공항 역시 시너지를 누릴 것으로 관측된다. 루이비통측도 인천공항에 매장을 내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나 환승객뿐 아니라 홍콩ㆍ싱가포르ㆍ베이징 공항을 찾는 쇼핑객들의 발길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공항공사도 “쇼핑시설의 지명도와 수준이 환승 공항을 선택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며 “루이비통의 입점은 2015년 환승객 1,000만 명 유치목표 달성에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면세점을 둘러싼 삼성-롯데간 경쟁이 앞으로 더 치열하게 전개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유독 공항 면세점과는 인연이 없던 롯데는 인천공항 2기 입점업체 선정 당시 화장품ㆍ향수 판매권을 AK면세점에 빼앗긴 뒤 지난해 이를 되찾아 온 셈이어서 최근에야 전 품목 입점을 이룬 상태다.
한편 이날 오전 8시30분경 김포공항을 통해 실무자들과 함께 내한한 아르노 회장은 수행원 10여명과 함께 신세계 강남점과 롯데백화점 애비뉴엘 매장 및 면세점 등을 둘러보는 등 소속 브랜드 매장을 두루 살펴봤으며 1일 출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