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기

줄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보양식을 파는 음식점 앞에는 늘 줄이 선다. 삼복의 찜통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줄은 늘어선다. 고속도로에도 줄은 선다. 자동차의 줄이 선다. 그 줄은 하루 해를 다 잡아 먹으며 산과 바다로 이어져 있다. 옛날 공산권의 여러 나라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줄이 섰다. 생필품을 사려는 줄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줄서기는 그런 절박한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보양식을 먹는 효과와 만족은 줄서서 기다린 땀과 인내를 보상하지 못할 것이다. 오며 가며 길바닥에 뿌린 욕설도 피서지에서의 즐거움을 까뭉게고도 남을 것이다. 안먹고 안 가면 고생도 안 할 것을, 얻는 이득과 그 대가를 계산하지 않고 사서 고생하는 것은 취향이나 선택이 아니라 이미 병에 가깝다. 거창하게 말하면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병이 도진 사람은 정치판에 가서도 줄을 선다. 더 적극적으로 줄을 대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더 많다. 또 이병이 더 도진 사람들은 새치기를 감행한다. 어느 세월에 줄을 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 줄서기의 병에도 합리성은 있다. 줄은 주류(主流)에만 선다. 사회에는 선악을 떠나 큰 줄기와 곁가지의 줄기 등 여러 가지 흐름이 있다. 주류에는 늘 줄이 선다. 줄이 선 곳은 주류로 보아 틀림없고, 줄이 안 선 곳은 별볼일 없는 곁가지다. 따라서 그 줄이 어디에 닿는지를 알아 볼 것도 없이 일단 줄이 서면 그 줄에 서는 것이 최소한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지 않고 끼어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우리사회는 격심한 경쟁사회다. 동시에 평등이 무엇보다 숭상되는 사회이기도 하다. 이 모순을 줄서기는 기묘하게 조화하고 있다. 늘어진 줄을 보고 평등과 일체감 그리고 질서를 찬양하게 된다. 경쟁에 뒤지지 않고 그나마 줄을 설 수 있게 된 자신을 치하한다. 그러나 사회의 흐름은 바뀐다. 알게 모르게 주류는 바뀐다. 줄서는 곳이 바뀌어 버린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경쟁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경쟁이 앞장서고 그 뒤를 평등의 줄서기가 뒤쫓아 가는 사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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