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가 나서라

요즘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의 목소리는 탁하게 갈라져 있다. 독감도 독감이려니와 `포스트 손`을 둘러싼 상황들이 그를 옥죄고 얽어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물론 그 자신은 누구보다 손길승 회장의 리더십이 계속되길 간곡히 바란다. 그러나 손 회장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한다면, 흔들리는 경제 상황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이젠 이건희 삼성회장, 구본무 LG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등 이른바 재계 `빅3`중 한 사람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3개 그룹을 들여다보면 이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은 전경련 회장직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부터 친다. “회장님 의중은 어떠세요”라는 질문이 무안할 지경이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대행체제나 경제계 원로 체제도 녹록치 않다. 현 부회장 스스로도 “든든하게 무게를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빅3`를 제외한 나머지 총수들이 맡는 방안도 재계 전반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쉽지 않은 얘기다. 일종의 `서열 의식`이 아직은 분명한 까닭이다. 게다가 재계 전반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도 냉랭하다. 비단 전경련 회장직 뿐 아니라, 기업들을 이어주던 끈 역시 급격하게 이완돼 있다. 그 원인이 재벌 정책이든, 재계 내부의 다른 곳에 있든…. 전경련 회장단은 조만간 비공개로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회장선출과 관련, 재계 를 짓누르는 부담감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답을 이끌어내기는 아마 힘들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대승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최선의 해법은 빅3 총수중 누군가가 나서는 것이다. 정답이 없다고 우회하는 것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적 필요성과 당위성은 십분 인정하지만 내 집 뒷뜰에서만은 안된다`는 그런 이기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무엇보다 국가원수의 리더십을 비판했던 재계의 모양새가 우스워진다. <김영기기자(산업부)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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