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 '퍼펙트 스톰' 경고등

유로존 디플레 우려 등 악재 쏟아지는데… 미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
미 2분기 성장률 깜짝 호전에 출구전략 행보 빨라질 수도
투자가들 현금비중 빠르게 늘려
다우존스 등 3대지수 2%대 급락… '공포지수' VIX는 크게 올라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하락세


현재 분출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여러 악재들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출구전략 신호와 맞물릴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을 휩쓰는 '퍼펙트 스톰'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디플레이션 가능성,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등 각종 악재에 투자가들이 둔감하지만 이르면 오는 9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간표가 나오면 동시다발적인 폭풍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7월3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등 3대 지수는 모두 2% 안팎의 급락세를 나타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16.93으로 27% 급등했다. 또 이날 독일과 프랑스 증시가 각각 1.94%, 1.53% 하락하는 등 범유럽 지수인 Stoxx50지수도 1.7% 급락했다. 1일 아시아 증시도 중국의 제조업 지표 호조에 힘입어 소폭 상승하다가 결국 모두 하락 마감했다. 한국의 코스피지수가 0.15%, 일본 닛케이지수 0.63%, 홍콩 항셍지수는 0.78% 각각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긴장 고조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돈풀기에 중독됐던 투자가들이 각종 리스크에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유로존 경기 재침체 우려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유로존의 7월 소비자물가(CPI) 예비치는 전년 대비 0.4%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지난 2009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0개월째 1%를 밑도는 것으로 2009년 10월 이후 최저치다.

또 미국의 2·4분기 성장률이 '깜짝' 호조를 보이고 임금인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연준의 기준금리 조기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7월31일 미 노동부는 고용비용지수가 올 2·4분기 0.7%(연율 기준)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2008년 3·4분기 이후 6년 만의 최대 폭이다. 로이터는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미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고용시장을 이유로 제로금리 유지 방침을 거듭 밝혔지만 올 하반기에도 임금인상에 속도가 붙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르헨티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도 다른 악재와 맞물려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US은행의 짐 러셀 수석 전략가는 "아르헨티나 디폴트는 전염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였다"고 설명했다. 큰 악재가 아니지만 이미 짐(악재)을 가득 실은 낙타(금융시장)를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 서방권의 러시아 제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이라크와 시리아의 내전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언제든지 글로벌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화약고다. 씨티그룹의 티나 포드햄 글로벌 정치애널리스트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25년간 (정치적으로) 비정상적인 평화의 시기를 누리면서 시장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불안감이 커지면서 투자가들도 위험자산에서 빠져나온 뒤 현금 비중을 높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인 리퍼에 따르면 7월30일까지 일주일 동안 미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노린 하이일드뮤추얼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에서 14억8,00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3주 연속 빠져나간 돈은 55억3,000만달러에 이른다.

또 로이터가 7월17~29일 월가의 펀드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러시아 등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며 고객들에게 현금보유 비중을 5% 가까이 높일 것을 권고했다. 이는 미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졌던 2008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연준이 지금과는 정반대로 시장의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크다. 이날 증권사인 컨버지엑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236명 가운데 51%가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연준의 통화정책을 꼽았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가자지구 사태는 각각 14%, 16%에 불과했다. 벨에어투자자문의 게리 플램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지금 시장에는 또 다른 거품, 중앙은행이 모든 문제의 해결사라는 과도한 확신이 팽배하다"며 "이 같은 신뢰가 흔들리면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의 라자 힌도차 리서치센터 전무이사는 "우크라이나 사태,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 가자지구 사태, 중국과 일본 간 영토분쟁 등 지정학적 위험이 선진국의 양적완화 지속으로 저평가돼 있다"며 "이르면 올 9월 연준이 출구전략 신호를 내놓으면 모든 위험이 불시에 부각되며 투자가들이 순식간에 아연실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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