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침몰 대참사] 구호에 그친 '안전한국'

경영난 업체가 대형 여객선 몰아도 감독 못해
20년 노후선박 개조 불구 안전진단 무사통과

진도 인근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구멍 뚫린 해양재난 관리체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마리나산업 등 해양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며 면허·안전 규제를 풀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해양사고관리시스템은 후진국만큼 빈틈투성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전사회'를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지만 정책 현장에서는 구호로 전락하고 있다.

선박의 무리한 개조가 합법화될 수 있다는 점은 대표 사례다. 20년 된 노후선박인 세월호는 승객 정원을 늘리기 위해 대폭 증축됐는데 해양수산부는 17일 이것이 적법한 절차를 거친 합법적 개조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증축으로 배가 균형감을 잃어 사고 해역에서 급선회시 침몰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앞으로 제2·제3의 세월호식 개조가 무사 통과할 수 있는 셈이다.

대출 이자조차 갚기 버거운 영세업체가 매번 수백 명씩의 인명을 담보로 국내 최대급 여객선을 장기간 운항해온 것은 더 큰 문제다.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해운은 최근 적자 누적으로 지난 2011년부터는 이자보상비율이 '1'을 밑돌아 영업을 해도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2011년 278%였던 부채비율은 2012년 375%, 2013년 409%로 급증했다. 업계 평균 부채비율인 214%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무리한 영업을 강행할 소지를 안고 있었지만 관할 당국은 영업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항만법상 여객업 면허 요건은 업체의 재무건전성 등을 규제하지 않는 탓이다. 실제로 세월호는 영업손실을 피하기 위해 사고 당일 악천후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운행을 강행했다는 논란을 사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 조항도 안전 불감증과 조난사고 수습의 난맥을 부르고 있다. 이번처럼 승객 구조는 뒷전이고 선장과 선원이 먼저 탈출한 것도 가벼운 처벌조항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선원의 경우 선원법을 통해 인명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도 최고 형량은 고작 1년 이하(선장은 5년 이하)에 불과하다. 선장이 직무에 태만했을 경우에도 해당 업체에는 소액의 과징금 처분이 내려질 뿐 면허취소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사태 예방과 수습의 책임을 져야 할 당국은 서로 책임은 미루고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다. 김동헌 재난안전원장은 "'재난'이나 '안전'이 들어간 법률은 1,600개나 돼 혼란을 키우고 있지만 정작 사고가 터졌을 때 부처 간 서로 떠미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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