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영의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3D프린팅 이야기] (4.마지막)소비혁명을 이끄는 3D프린팅


◇사진=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만든 초콜렛. 출처- inkpal.com

3D프린팅 기술은 기업들로 하여금 비용절감, 시간단축, 맞춤형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 혁명의 물결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이런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들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저렴한 비용과 더불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가져다 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단 방향 메커니즘은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이어서 이 기술에 대해 대중들이 쉽게 식상함을 느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3D프린팅 기술이 대중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는 이유는 기업들이 가져다 주는 혁신적인 기술로 만든 제품으로 수동적인 혜택을 누리는 측면에 있는 게 아니다. 단순히 신기술에 대한 열광만도 아니다. 본질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소비자들 스스로가 3D프린터기를 가지고 새로운 소비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에는 만들어진 제품이나 DIY제품을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누렸다면, 이제는 물질을 소비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소비자인 동시에 제조자가 된 것이다. 소비의 본질이 변해가고 있다.

물론 현재 가정용 3D 프린터는 실리콘, 고무, 플라스틱 등에 한정된 재료만 활용하다 보니 출력할 수 있는 제품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 3D 프린팅 커뮤니티에서 회원들이 만드는 작품들은 피규어나 필통, 연필꽂이 등 상대적으로 단순한 제품들이다. 그렇지만 더 나아가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재료들이 다양해진다면 상상도 못하는 세계가 열릴 것이다. 가령 지금 우리가 아이폰이나 갤럭시를 가지고 자기 입맛에 맞는 어플리케이션과 배경화면을 설치해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스마트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는 3D CAD 프로그램으로 옷이든 책상이든 직접 제품을 디자인을 하고 3D 프린터기로 출력만하면, 우리 손엔 전세계에 하나만 존재하는 제품을 소유하는 게 가능해진다.

TV에서 소개하는 맛집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음식도 직접 출력해서 먹을 수가 있을 것이다(현재 초콜릿이나 쿠키 같은 것들은 직접 출력해서 먹을 수 있는 3D프린터기가 등장한 상태이다). 또 구석기 시대나 청동기 시대 때 쓰였던 고대 유물들을 프린팅하여 자녀들 교육용으로도 활용 가능하며, 재활용 쓰레기들까지 재료로 쓰일 수가 있으니 친환경적인 이슈와 부합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새로운 소비 시대가 도래한다고 한들,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이 모든 것들은 원본이 되는 제품보다는 퀄리티가 뛰어나진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 가정용 3D 프린터가 가진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D 프린팅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혁신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DIY제품시장을 통해서 엿볼 수 있듯이 기존의 제품을 조립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3D 프린터기를 사용해 상상할 수 없는 패턴이나 형상을 띈 제품들을 출력하여 소비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태어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이유이다.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외국의 셰이프 웨이즈, 메이커봇 그리고 국내에서는 오픈 크리에이터스 업체가 자체적으로 3D프린팅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서 활동하는 회원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경쟁적으로 자랑하며 동시에 제작 방식까지 공개하면서 회원들간의 피드백 고리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또한 오픈소스로 운영되다 보니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적인 결함이 발견되면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흔히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놓고 온갖 마케팅 및 제품 개발에 주력하면서 서로를 절벽으로 밀어내려는 싸움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커뮤니티 내에서 회원들끼리 벌이는 활발한 제작품 경쟁은 이런 기술들의 확산을 촉진하기 마련이다.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 집단에서는 그러한 경쟁이 소위 말하는 협력적인 관계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해당 커뮤니티를 발전시키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 커뮤니티 일원들이 딱히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간에 지식을 공유하는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즉 내재적인 동기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참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컨설팅 수수료 같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자사 제품의 품질을 개선할 수 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을 획득하게 된 셈이다. 물론 이렇게 자발적인 참여자들에 대한 보상 여부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참고로 이런 논쟁에서 벗어나고자 <롱테일의 경제학>, <메이커스>의 저자로 유명한 크리스 엔더슨이 대표로 있는 3D로보틱스 경우에는 회원들의 기여도에 따라 작게는 머그컵을 크게는 3D 로보틱스의 스톡옵션을 부여하면서 회원들에게 물질적인 보상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대가 여부를 떠나서 한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 그 안에서 참여와 공유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곳에 정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배우고 공유하는 선순환이 계속될 수록 그 커뮤니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며, 소비자들로 구성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커뮤니티로 발전하게 된다. 3D 프린팅 기업들로서는 자사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런 회원들이야 말로 자사의 지속가능한 경쟁력 창출에 있어서 큰 성장동력이 되는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MIT 경제학자 에릭폰 히벨은 ‘선도적 사용자 혁신’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기업이 주도하는 혁신이 아니라 그 제품을 가장 활발히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혁신을 뜻한다. 그는 어떤 도구의 능력이 그 도구의 궁극적 기능을 완전히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사용자들이 기업 입장으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혁신의 기회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매우 거대하다. 3D프린팅 기술이 진정한 산업 및 소비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은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며, 기업들은 이런 소비자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공유에 대해 다양한 형태로 얼마나 잘 보상하느냐에 달려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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