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필] 조회장의 날개

孫光植(언론인)재계에서는 유능한 전문 경영인이었던 L씨 형제가 반자율 반타율로 각기 H그룹과 K그룹을 떠날 때 한 말이 있다. 한국의 경영전문가 시대는 한 30년이 흘러야 가능할 지 모른다고. 두 사람 다 재벌그룹의 말단 사원으로 시작하여 톱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이니 경제 이코노미스트를 보다 현실적인 예측일 듯 싶다. 지난 20년 숱한 정치적 변화와 사회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오너 경영체제는 끄떡이 없다. 잦은 사고의 원인이 족벌체제에 있다는 사회적 비난에 정치적 압력까지 동원되어 KAL의 조중훈회장 부자가 이번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누구도 이 거대 항공재벌의 경영권이 새 사장에게 넘어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너경영체제가 건재하는 본질은 따지고 보면 이런 대중적 예단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예단으로 경영대권은 오너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장관도 은행장도 심지어 노조위원장도 오너라야 재벌기업에 걸린 문제를 타결할 수 있는 결정권자로 인식한다. 최근의 빅딜 과정이나 구조조정에서도 전문경영인의 그림자는 왜소하기 짝이 없다. 경제개혁을 한다지만 재벌의 족벌경영체제의 해악을 거론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KAL의 조회장 부자 퇴출압력에서도 「다른 재벌까지 거론하는 것은 아니」라고 청와대 쪽은 애써 주석을 달고 있다. 오너경영체제를 두고 한국적인 기업지배의 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벌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주도한 사람들이 바로 오너이며 그들이 구축한 기업제국의 문화도 이들을 중심 기둥으로 이룩되었기 때문에 쉽사리 바뀌기 어렵다는 견해이다. 그리하여 기업은 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한 단계 더 비약하여 「경영도 주인이 해야한다」는 시류를 깔아 놓았다. 최근에는 전문경영인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기아자동차의 실패로하여 이 논리는 또다른 측면에서 오너경영체제의 현실성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재벌오너의 2세, 3세까지 내려가는 세습경영은 아무런 저항도 비판도 받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30년은 걸릴 것 같다. 물론 재벌기업엔 유능한 전문경영자인 사장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오너와의 대칭적 경영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라면 오너경영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항시 「용의 비늘」을 건드릴까 두려워한다. 26년전 취재기자인 필자에게 『케네디 공항에 태극 마크를 단 대한항공이 착륙하는 걸 보면 나는 은퇴할거야』라고 말했던 조중훈회장. 그 뒤로도 용이 되어 여전히 세계를 누볐던 조회장의 날개가 타율적으로 꺾인 이번 「경영사고」를 다른 재벌들도 많이 생각해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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