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성공도 "우리가 해낸다"

조직위, 여성 106명 근무 업무처리능력 '일당백'광화문 사거리 파이낸스센터 6층 월드컵조직위원회 경기부. 국내 여성최초 국제축구심판 임은주씨의 근무 모습이 언뜻 낯설어 보인다.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파란 운동장을 달리는 심판이 아니라 한 손에 전화기, 다른 한 손엔 볼펜을 쥐고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그녀의 직함은 심판담당관."저요?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심판 72명의 모든 관리를 담당하고 있어요" 2002 한ㆍ일월드컵 조직위원회에 맹렬 여성들의 활약이 돋보여 화제다. 조직위 전체 직원 530명 중 여성은 106명으로 전직원의 20% 가량에 불과하지만, 성공월드컵 개최를 위해 없어선 안될 존재다. 과장급 이상 여성직원이 4명이며 숙박, 미디어 운영, 수송협력, 통역 등 중요 역할을 맡고 있다. 대부분의 업무를 FIFA와 함께 진행하는 만큼 어학 실력은 물론이고 경력도 화려하다. 강원국제관광엑스포 전문위원, 국무총리 표창 모범공무원, 일본 덴츠사 출신, 외국어학원 강사 등 각자의 프로필을 보면 빈칸이 없다. 대기업, 정부기관, 국제심판 등 출신도 다양한 이들이 한마음으로 바라는 '골'은 이번 월드컵을 최고로 만드는 것. 각자의 전문능력을 살려 밤낮도 잊은 채 월드컵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힘들 법도 하지만 역사의 한 복판에 서있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에 육체의 피곤은 잊은 지 오래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여성직원 대부분이 30~40대라 '고참'공무원들과 세대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또 워낙 또래 동료가 없어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나눌 사람도 부족해 외로움을 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은 금방 해결됐다.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철저한 일 처리로 실력을 인정 받았던 것. 한 남자과장은"남자들이 대부분이라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며 "업무처리 능력도 뛰어나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직원들은 이번 조직위 활동 참여가 인생 최고의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단일 종목 세계최대 이벤트를 준비한 경험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안광미 인터넷홍보과장은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을 버리고 과감히 조직 위에 뛰어들었다. 삼성물산 인터넷 사업부에서 근무했던 안 과장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없이 지원했다"며 "더 넓고 큰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죠. 국내는 물론 전세계인을 상대로 한국을 알리는 사업에 동참할 수 있었기에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임은주 심판담당관은 이번 월드컵 최초 여성심판으로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여자'심판에게 월드컵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의기소침해 있던 임 담당관이 조직위에 합류한 것은 지난해 말. "하루 4시간씩 운동하고 프로리그 심판직을 병행하면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아 처음에는 다소 망설였다"며 "하지만 여성으로서 국가적 행사에 기여할 수 있고, 현직 심판으로서 향후 진로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합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조직위는 월드컵대회가 끝나면 자동 해체된다. 월드컵 이후 이들의 계획은 무얼까. 한마디로 가지각색이다. 강은아 의식행사과장은 원래 비상기획위원회에서 비상시 군사작전 지원업무를 담당했었지만 조직위로 파견 나와 출전국 국가연주를 담당하고 있다. 강 과장은 "대학 전공과 같은 계열에서 일하니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다"며 "조직위 활동이 끝난 후 비상기획위원회로 복귀할 지 아니면 문화이벤트 쪽으로 진로를 바꿀 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UCC캐리브 대학에서 이벤트&컨벤션 매니지먼트를 전공하고 현재 조직위 수송협력담당관을 맡고 있는 성진숙씨는 대형이벤트 경험을 최대한 살릴 생각이다. 준비기간 중 쌓은 인맥과 노하우를 살려 앞으로 국제회의 및 이벤트 전문가나 대학 교수가 되는 게 꿈이다. 임은주 심판담당관은 월드컵 이후 유럽 진출을 모색 중이다. 조직위 여성직원들이 이번 월드컵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일본보다 잘하기, 본선 3승, 역사에 남을 문화월드컵 등 소박한 꿈부터 거창한 꿈까지 무지개 빛깔처럼 다양하다. 비온 뒤 맑게 개인 하늘에 무지개가 걸리 듯 이들의 땀방울 뒤에 성공적인 월드컵이 꽃피길 기대해 본다. 김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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