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12월 23일] '소리 없는 쓰나미' 식량위기

지난해 우리나라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여부를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를 때 필리핀ㆍ이집트ㆍ인도네시아 등 세계 37개 국가에서는 식량난에 따른 폭동과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국제 곡물시장은 약간의 수급 변화에도 가격 변동 폭이 매우 심하다. 기후 등 자연 의존도가 높으며 주요 곡물 생산국인 미국ㆍ중국ㆍ캐나다 등의 나라가 곡물 수출을 독점하고 있어 수급이 비탄력적이다. 이밖에도 육류 위주의 식생활 변화, 급격한 도시화로 농지면적 감소, 중국ㆍ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의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곡물ㆍ사료의 수요 증가 등 많은 요인들이 세계 식량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불과 30년 전 우리나라는 매년 수십만톤의 쌀을 수입했다. 지난 1977년 신품종 통일벼를 개발, 쌀 생산량 4,000만석을 돌파해 세계 최고의 다수확 국가로 부상하면서 쌀은 자급자족하게 됐지만 나머지 곡물 자급률은 1970년 이후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 자급률은 1975년 79%였으나 2008년 4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으며 사료용을 포함한 자급률은 같은 기간 73%에서 27%로 하락했다. 자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7위다. 쌀을 제외한 옥수수ㆍ콩ㆍ밀 등 나머지 곡물 자급률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세계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각적인 대안이 모색돼야 한다.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는 여건상 국내 자급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외로 눈을 돌려 곡물 수출국 현지농장과의 계약생산을 확대하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식량 수집상과 수출상들을 인수하는 등 대책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 국제 곡물시장을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주로 항구와 선적시설ㆍ창고ㆍ수송수단을 독과점한 상태다. 따라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시기에 필요로 하는 물량을 국내로 반입하기 위해서는 수출국 현지에서 우리나라로 식량을 반입하기 위한 저장 및 수송 인프라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본의 경우 현재 생산은 현지에 맡기고 생산 이후 구매ㆍ저장시설 등 유통구조에 투자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반도체와 자동차를 수출해 번 돈으로 식량을 수입해 먹는 게 더 낫다고 경제적 효율성의 잣대와 비교우위론을 내세워 식량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식량은 우리 국민의 생명이다. 우리 식량을 지키지 못하면 '소리 없는 쓰나미'처럼 언제 우리에게 재앙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우리의 식량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식량 안보이고 생명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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