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새해의 첫 달이 절반이나 훌쩍 지나갔지만 명절 중의 으뜸인 설날이 있어 기분만은 흐뭇하다. 어릴 적 설날만 되면 떡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좋았던 추억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다. 이때만은 흰쌀을 아낌없이 꺼내시어 시루에 찌고 흰 가래떡을 길게 늘여 뽑던 어머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었다. 설날이 한참 지난 뒤 딱딱히 굳어버린 가래떡을 화롯불에 구워주시던 그 맛이란….
하지만 오랜 경기불황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탓에 설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듯싶다. 내수시장의 침체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겨울 날씨만큼이나 차갑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수많은 청년실업자와 실직자들로 설경기는 더 꽁꽁 얼어붙은 듯하다. 전국 산업단지도 설날 상여금 지급비율이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용기를 북돋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설날의 의미가 각별히 중요해진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설 쇠기` 기간 동안만큼은 바쁜 일손을 놓고 살았다. 음식과 술을 나눠 먹고 덕담을 나누며 춤과 놀이로 밤을 밝힌 뒤에야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명절 기간에 서로를 다독이면서 새로운 한해 동안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힘과 기운을 얻은 셈이다.
설 중에서도 첫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설날을 신일(愼日)이라고 하듯이 우리 조상들은 한해의 행복과 불행은 정월 초하룻날에 결정된다고 믿을 정도였다. 섣달 그믐날 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며 묵은 해의 마지막 밤을 지새웠다. 설날이 밝으면 새 출발을 하겠다는 뜻에서 아침 일찍 설빔을 갈아입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 뒤 웃어른께 세배를 올리며 건강과 행복을 비는 아주 성스러운 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도시생활과 산업사회에 얽매여 살고 있는 도시인이라 해도 이런 설날만큼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 즐거운 때임이 틀림없다. 온 국민이 같은 날 아침 일찍 차례를 올리고 세배를 드리며 덕담을 나눌 수 있는 날. 아무리 경기가 어렵고 먹고살기 힘들어도 다 같은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나누며 희망을 되새긴다.
기상청은 이번 설을 앞두고 모처럼 만에 전국적인 대설을 예보했다. 예로부터 새해 첫날 내리는 눈은 그 기운이 상서롭다 해서 서설(瑞雪)이라 불렀다. 그만큼 이번 설은 정겨운 고향을 찾는 설레임을 더해줄 것 같다. 이왕이면 갑신년(甲申年) 설날 아침에도 서설이 내려 온 국민 모두에게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
<김동근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