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사업보다 경영권에 더 신경을 쓴다면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지금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거나 코스닥에 등록돼 있는 국내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그런 상태에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 국내 상장기업 200개사를 대상으로 `주주권 행사와 경영권 안정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영권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응답이 19.8%에 달했다. 특히 최근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비중을 사상최고 수준인 40% 가까이로 끌어올리자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단일 외국펀드들이 5%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가 무려 120개에 이르는 데 이는 작년 말에 비해 56.3%나 늘어난 것이다.
대한상의가 27일 `경영권방어제도의 역차별 현황과 정책시사점`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외국인에 의한 `그린메일`(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에게 비싼 값으로 보유주식을 되파는 일)이나 `적대적 M&A`에 대항할 수 있도록 관련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저가의 신주매수선택권, 법인간 주식 교차보유 등 다양한 적대적 M&A 방어수단을 부여하고 있는 반면 우리 기업들은 적대적 M&A에 대응할만한 수단이 거의 없고 오히려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에 의해 경영권 방어를 제한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는 적대적 M&A 방지를 위해 저가신주발행 금지, 총수일가의 지분율 공개 등 적대적 M&A를 부추길 수 있는 정책 및 관련규정의 폐지,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대적 M&A는 증시활성화를 유발하고 대주주의 책임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배척할 사항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악용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재계가 요구하는 사항들을 다 들어 줄 경우 대주주의 전횡이나 부당내부거래 등을 견제할 장치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적대적 M&A가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균형있는 접근이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M&A 공방 과정에서 기업에 피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마침 정부가 재벌정책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를 진행중인 만큼 그 과정에서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 수단을 적절히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특히 해외기업에 대한 국내기업의 역차별 문제 등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도 적대적 M&A에 대한 경영권방어 수단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주주들이 새 제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견제장치도 필요하지만 먼저 그들 스스로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