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의 경영권 유지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는 법정관리제도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동양그룹은 최근 이틀에 걸쳐 계열사 5곳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중에는 당초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나 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예상했던 동양시멘트와 현재현 회장의 장남 현승담씨가 대표로 있는 동양네트웍스까지 포함됐다. 기습적인 조치에 시장은 물론 채권단과 금융감독원까지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회사 측은 "보유자산을 빨리 매각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기업을 정상화하기 위함"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멀쩡한 기업까지 극약처방에 포함한 이유로는 군색하다. 주식거래가 정지되고 회사채까지 날벼락을 맞는 판에 투자자 보호를 내세운 데 이르러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나흘 전 "고객과 투자자에 대한 큰 책임을 통감한다"는 현 회장의 사과가 공허할 뿐이다.
부채율 200%도 안 되는 두 계열사를 법정관리로 몰고 간 데 시장이 의혹의 눈길을 주는 건 당연하다. 현행 통합도산법은 관리인유지(DIP) 제도를 둬 중대한 결함이 없으면 원래 경영인을 그대로 관리인으로 선임한다. 금융권 대출과 회사채ㆍ기업어음(CP) 등 채무도 탕감 받을 수 있다. 기업을 사지로 몰아넣고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음에도 빚은 없애고 경영권은 보장하니 대주주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지난해 웅진사태가 터졌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윤석금 웅진 회장이 경영권 유지를 위해 웅진과 극동건설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DIP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올 7월에는 관리인 선정을 엄격히 하고 법원이 특별 감독하는 통합도산법 개정안이 국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아직 상정도 못한 채 책상서랍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동양그룹 계열사의 법정관리 개시와 기존 경영인의 관리인 선임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하지만 최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일은 국회가 할 수 있다. 정치권은 하루 빨리 통합도산법 개정안을 처리해 경영권 도피행각을 막고 선량한 투자자들이 더 이상 피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