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제를 앞두고 오랜 친구를 찾아 인사를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2월2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당시 당 총서기)을 만난 롄잔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이 한 말이다. 정치색을 빼버린 담백한 말이지만 이 한 마디에 양안관계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대만도 분단 상황이다. 하지만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 핵실험ㆍ미사일 등으로 끊임없는 위협과 긴장이 야기되는 남북한과 달리 양안관계는 철저한 정경분리 원칙으로 시련을 겪으면서도 한 단계씩 협력의 폭을 넓히고 있다. 1979년까지 47만발의 포탄을 서로 쏟아부으며 대립했던 기억은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같은 꿈을 공유하는 관계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대만 총통부 부비서장(경제부총리)을 지낸 쑤치 타이베이포럼 이사장은 "양안 경제관계는 이미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단계를 거쳐 초보적인 정치적 신뢰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며 "앞으로 양안관계는 베이징의 의지에 따라 변화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경후정(先經後政) 원칙이 경제공동체로=푸젠성 샤먼시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진먼다오. 면적이 132㎢에 불과한 이 섬은 중국과 대만의 최전방이다. 진먼다오 해변의 절벽에는 지금도 포탄 자국이 선명하다. 대만 해방이라는 명목 아래 중국 인민군이 퍼부었던 포탄은 1978년 중국 공산당의 노선이 무력해방에서 평화통일로 전환되고 이듬해 미중 수교까지 체결되면서 멈췄다.
중국과 대만은 갈등과 반목의 상징이었던 진먼다오와 샤먼시를 경제협력의 상징으로 탈바꿈 시켰다. 푸젠성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해협서안경제구'를 만들어 양안 경제공동체의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
양안 경제공동체는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성장한계에 부딪힌 대만은 중국 내수시장 진출로 '차이완' 경제권을 형성하며 15억6,000만명 규모의 소비시장을 확보했다. 중국은 안정적인 투자자를 확보하는 동시에 정치ㆍ군사적 비용을 줄였다. 지난해 양안의 경제교역 규모는 1,689억달러로 2000년(261억달러) 대비 6배 넘게 증가했다.
푸젠성 당서기를 지낸 시 주석이 정권을 장악하며 양안체제는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해협을 사이에 둔 경제공동체에서 글로벌 경제공동체로 도약하고 있는 것이다. 5월 보아오포럼에서 시 주석은 샤오완창 전 대만 부총통과 만나 중국이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주도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협정(RCEP)에 대만이 들어오고 경제 블록이 형성되면 중국은 대만 기업을 자국 기업과 동등하게 대우할 계획임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대만은 양안 금융협력을 통해 위안화의 역외거래센터를 대만에 유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국 경제력, 정치로 확대=중국과 대만이 지금처럼 가까워진다면 통일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현실적으로 양안의 통일은 아직 시기상조다. 경제적 이해관계는 맞춰왔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실적으로 거론되는 양안의 통일 모델은 1국가2체제. 이미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에서 상당한 자치를 허용하는 1국가2체제를 실시하고 있는 만큼 대만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대만인들이 중국 정부가 임명하다시피 하는 최고지도자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중국인과 대만인을 분리해 생각하는 대만인들로서는 중국의 정치적 지배를 받느니 지금 상황이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 중국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1국가2체제보다는 완전한 통일을 원한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2009년 10월 중국 건국 60주년 행사에서 해협 양안의 평화적 발전을 위해 1국2체제를 견지하겠지만 조국의 완전한 통일실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대만은 경제적 교류는 허용하지만 정치적 교류는 철저하게 문을 닫고 있는 반면 중국은 경제적 파워로 대만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조금씩 변화하는 양안의 정치적 관계가 향후 양안관계를 예상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안관계는 한반도 통일 모델=양안 경제협력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남북한 경제협력이 멈춰진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각에서는 양안 경제협력 모델이 우리 통일의 전 단계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양안 경제공동체의 핵심은 정치색을 쏙 뺀 교류다. 양국은 구동존이(求同存異ㆍ차이점을 인정하며 같은 점을 찾는다)의 원칙 아래 정치와 경제를 분리, 접근했다. 이해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대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졌음에도 경협 초기 무역적자를 감수하며 경협을 성사시켰고 대만은 안보불안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중국에 기술을 이전했다"며 "우리도 경제적으로 상대적 우위인 한국이 장기적 이득을 위해 일부 손해를 감수하고 경협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대만과 달리 합리적인 대화가 거의 되지 않고 군사적 도발을 서슴지 않는 폐쇄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실적인 대안은 양안식의 접근법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장영권 미래전략원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대만과 중국의 통일 인식과 접근법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며 "양안 정치인들이 이념보다 이익을 우선했듯이 우리도 인내를 가지고 이익에 우선하는 통일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