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과 ‘치킨 게임’

영화 `원초적 본능`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샤론 스톤의 뇌쇄적 미모와 함께 무시무시한 편집증적인 증오를 생생히 기억한다. 연쇄살인의 모티브는 바로 사랑을 빙자한 소유욕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런 욕망을 가로막으면 끔찍한 살인을 피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 형사로 나온 마이클 더글러스가 샤론 스톤에게 연정을 느끼자 그녀의 연인은 한밤중에 대로상에서 마이클 더글러스와 생명을 건 한판승부를 벌인다. 이런 승부를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라고 한다. 자신의 차를 몰고 마주오는 상대방의 차로 돌진하다 핸들을 꺾어 피하는 쪽이 겁쟁이(치킨), 즉 패자가 되는 게임이다. 다행히 둘 가운데 하나가 겁쟁이가 되면 모두 생명을 건질 수 있지만 둘 다 상대방의 양보를 기다리며 핸들을 돌리지 않으면 게임은 파국으로 끝난다. 원래 `치킨 게임`이라는 용어는 핵전쟁을 설명하는 국제정치학 용어다. 서로 자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믿고 상대방이 굴복하도록 밀어붙이다 공멸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킨 게임이 국제정치무대가 아니라 한국정치에서도 등장했다. 다른 나라 얘기로 해외토픽으로나 접할 수 있었던 대통령탄핵이 11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통과됐다. 야당은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반발해 거듭 사과를 요구했지만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마침내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결정적인 비리가 드러났을 때 보통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다. 대통령의 선거운동이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이것이 결정적인 탄핵사유가 되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또 대통령이 왜 `진솔한 사과`한 마디로 파국을 막으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도 많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소유욕(총선 승리)에서 비롯된 치킨 게임으로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상대방의 차를 향해 돌진하면서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의 오기만이 불을 뿜는다. 정치적 불안에 따른 정책 표류, 사회ㆍ경제적 혼란 등에 대한 우려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여야가 광란의 질주를 벌이는 차에는 국민이 승객으로 타고 있다. 정치권의 치킨 게임으로 잔뜩 숨을 죽인 채 자신들의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국민들이 정말 불쌍하다. <정문재 경제부 기자 timot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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