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를 잡고서도 바둑을 진 경험을 애기가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필자 역시 그런 경험이 숱하게 있다. 대마를 잡아먹고 나면 포만감과 함께 기묘한 흥분에 사로잡힌다. 자만심도 생기고 미안한 마음도 생긴다. 거기에 편승하여 고개를 쳐드는 놈이 있다. 승세를 움켜쥐고 빼앗기지 말아야 하겠다는 초조감이다. 대박을 터뜨렸으니 잔돈푼에 구애받지 말고 대충 골인을 서둘러야겠다는 무사안일주의와 부자몸조심이 첨가된다. "부자가 거지와 싸워봤자 명주바지만 찢어지지." 작고한 시인 신동문(상당히 센 1급이었음) 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싸움을 피하고 분란을 피하고 인심좋게 소마(小馬)쯤은 떼어주고…. 이러다 보면 패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훈현은 언제나 대마를 잡고서도 지독하게 밀어붙인다. 대마가 잡히는 것. 사망하는 것. 그것이 패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순교자의 잠언은 여기서 완성된다. 사망은 패배가 아니다. 똑같이 성립되는 잠언. 죽이는 것이 승리가 아니다. 백58이 결정적인 완착이었다. 패착이라 하지 않고 완착이라고 한 것은 이 실수 이후에도 백이 여전히 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백58로는 이렇게 멋을 부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참고도1의 백1로 18급짜리 하수처럼 전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흑2로 받을 때 백3으로 젖혔으면 백이 2집반은 너끈히 이기는 바둑이었던 것이다. 흑59는 유인책. 백이 무심코 참고도2의 백1, 3으로 두면 흑4로 끊겨 백 3점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