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푸틴'의 미래 경제에 달렸다

에르도안 총리, 경제 업적 바탕 첫 직선제 대선서 51.8% 득표
최대 10년 권력 연장 가능해져
증시 폭락 - 실업률·물가 급등… 고성장 후유증 극복 새 과제로



'경제성장이 낳은 '터키의 푸틴'이 고성장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10일(현지시간) 치러진 터키 대통령선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장기집권의 문을 연 가운데 국제사회의 관심은 벌써부터 대통령 당선인의 앞에 산적한 경제적 난관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11년 동안 터키를 지배해온 에르도안 총리가 최대 10년 더 권력연장이 가능한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집권기간에 달성한 경제 업적이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자리를 바꿔 장기독재의 길을 연 21세기 '차르(제정 러시아 시절 황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뒤를 따르고 있는 그를 '터키의 푸틴'으로 부른다. 에르도안의 앞날은 공교롭게도 그가 이룬 성과의 후유증에 이제 막 노출되기 시작한 터키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터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터키 정치사상 처음 실시된 직선제 대선에서 정의개발당(AKP) 후보인 에르도안 총리가 과반 득표해 결선투표 없이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터키 민영방송 NTV와 CNN튀르크 등이 자체 집계한 그의 득표율은 51.8%였다.

터키는 2007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도입했지만 실제 통치체제는 총리가 실질적 권한을 갖는 내각책임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선거기간에 명문상으로만 존재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준 대통령제'로 국가 체제를 전환하겠다며 개헌을 통해 대통령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3선 총리인 에르도안이 AKP당의 4선 연임 금지 규정으로 총리로서의 집권연장이 불가능해지자 임기 5년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직으로 방향을 틀어 21년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에르도안이 처한 최근 정치상황을 돌이켜보면 이번 대선의 압도적 승리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거액의 비자금 은폐 및 뇌물수수 혐의와 온갖 구설수에 휩싸이면서 비난의 대상이 돼왔다. 이에 대해 이스탄불 바흐체세히르대의 세이페틴 구르셀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에르도안의 성공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며 "모든 것은 경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의 분열과 에르도안의 반세속적 국민선동 전략 등이 작은 원동력이 되긴 했지만 본질적인 승리의 요인은 총리 시절 그가 이룬 경제성장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1년 외환위기를 맞은 터키는 2003년 에르도안 집권 이후 연평균 5.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가장 견실한 이머징국가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집권기간에 국내총생산(GDP)과 1인당 국민소득은 3배 이상 뛰었고 이 같은 경제성장에 주목한 유럽·러시아·중국 등 외국인 자본은 터키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1세기 술탄(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최고통치자)'이 되겠다는 그의 야망이 계획처럼 될지는 미지수다. 의회에서 AKP당의 의석 수는 대통령제 개헌을 위한 정족수(전체 의석의 3분의2)에 미치지 못한다. 의석 수를 늘리기 위해 내년 6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당길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더 큰 장애물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삐걱대기 시작한 터키 경제다. 터키 경제는 높은 외국자본 의존도로 미국 등 선진국의 통화긴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긴축 시사 발언만으로 터키 리리화 가치가 20% 이상 폭락하고 증시 시가총액의 3분의1이 날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9%까지 치솟은 실업률 및 물가도 터키 경제 및 에르도안의 발목을 잡을 만한 재료다. 독일 국제방송 도이치벨레는 "경기진작을 위해 금리인하를 고집해온 에르도안이 최근 중앙은행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뒀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터키의 금융위기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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