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다 지난 9일 숨진 채 발견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권에 금품을 건넨 정황을 기록한 메모로 남기면서 그 이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메모에는 검찰이 확인한 허태열·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외에 이병기 현 비서실장, 이완구 국무총리 등 현 정부 핵심인사의 이름들이 적시됐다. 이 메모는 숨진 채 발견된 성 전 회장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왔다. 따라서 그가 애초 구체적인 의도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메모를 작성한 뒤 몸에 지니고 집을 나섰으며 인터뷰도 진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메모에는 '유정복 3억, 홍문종 2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허태열 7억, 김기춘 10만달러'라는 글과 함께 '이병기, 이완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김 전 실장의 이름 옆에는 '2006년 9월26일'이라는 날짜도 적혀 있다.
이날 오후12시10분께 경향신문이 공개한 녹취파일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의 사망 당일인 9일 오전6시께 이뤄진 인터뷰 내용을 담은 3분51초 분량의 녹취파일을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녹취파일에서 성 전 회장은 허 전 실장에게 7억원, 김 전 실장에게 10만달러를 건넸다고 폭로했다.
성 전 회장은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2007년 대선캠프 때 제가 많이 도왔어요. 잘 알다시피 기업 하는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 무시할 수 없지 않습니까"라며 "현금 7억 주고"라고 말했다. 이어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몇 회에 걸쳐 주고 그 돈 갖고 경선을 치른 것"이라며 구체적인 장소와 이유도 설명했다.
따라서 성 전 회장의 정확한 심경을 알 길은 없으나 사망 전날 기자회견 내용과 유족 의견 등을 토대로 추측하자면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마당에 현 정권에 대한 서운함을 작심하고 표출하고자 메모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메모와 같은 문건은 물질적 실체가 있어 여론 호소력이 상당한 편이어서 메모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면 현 정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