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김석철 국가건축정책위원장

'국토·도시계획의 헌법' 만드는 심정으로 일하겠다
해발 70m이상에 '中山間도시' 만들어 주택 싸게 공급
북한·비무장지대 개발 '제대로 된 작품' 만들고 싶어
암 투병 끝 뒤늦게 첫 공직 … 1년 안에 실력 보여줄 것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국가를 위해 나름대로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일할 수 있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도시계획자로서 역할이 있겠다 싶었어요. 공직을 맡지 않았으면 개인작업으로 끝났겠지만 공직자가 됐으니 국가정책으로 발전시켜야죠. 2~3년 만이라도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일해보려고 합니다." 김석철(71·사진)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명지대 석좌교수)은 여의도, 서울대 관악캠퍼스, 예술의전당, 경주 보문단지 마스터플랜 등에 참여한 국내 대표적인 건축가지만 평생 공직이나 건축 관련 단체장을 맡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그에게 국토 인프라 설계와 도시계획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탁월한 지경학적(地經學的) 식견과 풍부한 아이디어 때문이다. 그런 그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공직을 맡았다. 대통령에게 건축정책을 조언하는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국토환경 디자인 개선 및 건축문화 진흥을 위해 지난 2008년 12월 출범했지만 그동안 성과가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 위원장은 "국건위가 그동안 시청 건축위원회처럼 너무 디테일한 부분만 건드리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을 잘 안다"며 "2년 임기가 너무 짧아 가시적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지만 국토·도시계획과 건축과 관련해 '헌법'이라고 할 만한 것을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뒤편에 자리한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오랜 투병생활 탓에 얼굴이 핼쑥했지만 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2002년 위암수술을 받은 그는 2005년 위암이 식도암으로 전이돼 열 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위와 식도를 대부분 떼어냈다. 지난해 7월에는 두경부암이 발견돼 넉 달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수술과 항암치료로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누워 죽어갈 때(As I Lay Dying)'를 읽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죽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유산분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인데 이게 보통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에요. 어떤 건물은 값은 상당히 나가지만 매매가 어렵다고 하고.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졸부라고 욕을 하지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동산은 상당히 가치가 있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행복한 대상이 돼야 해요."

김 위원장은 3기 국건위가 추진할 구체적인 정책 세 가지를 꼽았는데 첫번째가 '행복한 부동산'이다. 그는 지금 경제가 '부동산 본위제'라고 할 만큼 부동산이 개인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경기침체로 가격이 떨어지고 거래가 줄면서 국민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렇다고 집값이 크게 올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의 터전이 되고 보다 투명하고 계량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지론이다. 그러면서 중산간(中山間) 도시를 건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중산간 도시는 해발 70m 이상의 산자락에 위치한 도시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가격의 절반이 땅값입니다. 땅값을 낮추기 어려우니 새로운 토지를 공급해야 하는데 기존 도시에서는 힘듭니다. 과거에는 산림녹화와 상하수도 문제 때문에 70m 이상에 도시를 공급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중산간 지역에 도시를 만들고 이들 도시를 서로 연결하면 도로가 되는 거죠. 이렇게 토지를 마련하고 건설원가를 절감하면 주택을 보다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습니다. 중산간도시법을 만들어 수도권 몇 군데서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국건위가 추진할 두번째 프로젝트는 '창조적 재건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선진국일수록 신축보다는 증개축과 개보수 수요가 많은 만큼 재건축을 하는 과정에서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효자 기업이지만 제조업만으로는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세기는 장치산업이 지배했다면 21세기는 '소프트 인더스트리(soft industry)'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10년 전 북촌에 한옥을 매입해 사무실로 개조할 당시의 일화를 들려줬다.

"한옥을 개조하기 위해 목수를 수소문했는데 구할 수가 없었어요. 혹시 물받이 홈통을 만드는 데 가면 만날 수 있을까 해서 갔더니 홈통 만드는 사람이 목수였습니다. 한옥이 인기 없던 시절이니까 일이 없어 홈통을 만들고 있던 겁니다. 동네 친구들 중 노는 사람들을 불러서 틈틈이 목수일도 가르치고 있더군요. 2000년대 중반부터 한옥 바람이 불면서 가격이 10배나 뛰고 증개축이 활발해졌습니다. 덩달아 목수들도 바빠졌죠. 지금 북촌에서 일하는 목수가 300명이 넘습니다. 이런 게 창조적 재건축이고 고용창출입니다. 침체에 빠져 있는 건축산업의 돌파구이기도 하죠."

김 위원장은 1975년 쿠웨이트 자하라 신도시 건설을 위한 국제 현상설계 공모에 당선돼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해외에 도시를 수출한 최초의 사례였다. 4,000가구 규모의 주택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그는 도시 수출이 갖는 파급력을 실감했다. 설계 과정에서 해당 도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재 공급, 인력 파견, 플랜트 수출 등 기획과 설계·시공·경영에 걸쳐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재 대우·한화·포스코건설 등 국내 건설사들이 베트남·이라크에서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부 차원에서 도시 수출을 전략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면 10년 안에 짓는 것으로 끝나는데 도시 하나를 건설하면 최소 20~30년이고 상하수도 등 인프라가 엄청납니다. 도시를 다 짓고 나서도 경영인력이 상주하게 되니 고용창출 효과도 큽니다. 과거 해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고급인력들이 지금 대부분 놀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200만명이 넘을 겁니다. 청년실업도 해결해야 하지만 중장년 숙련 근로자의 실업 문제도 심각합니다. 중동과 인도·아프리카는 여전히 풍부한 건설노동시장입니다. 국건위가 도시 수출 전략을 짜고 우수한 인력을 뽑아서 훈련시키는 일을 해볼까 합니다."

국건위에는 정부 부처 장관 10명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지만 지금까지 장관이 회의에 참석한 적은 거의 없다. 지난해에는 공식 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아 '식물 위원회'라는 지적을 받았다. 건축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주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김 위원장은 "위원장이 힘이 있으면 위원회도 힘이 생긴다"며 "1년 안에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힘줘 말했다.

건축가이자 도시설계자로 40여년을 쉼없이 달려온 김 위원장의 마지막 꿈은 북한과 비무장지대(DMZ)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는 2012년 9월에 펴낸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에서 북한 나진·선봉과 두만강 하구를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을 통해 북한과 중국·러시아 3국의 영토가 겹치는 곳에 공항과 항만시설을 만들어 개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DMZ에 에덴동산과 같은 21세기형 소도시를 건설하는 계획도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여의도를 개발했는데 40년이 지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을 돕게 됐네요. 박 전 대통령이 저를 천재라고 했는데 진짜라는 것을 보여줄 겁니다. (웃음) 그동안 도시설계를 많이 했지만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600여년 전 정도전이 조선의 큰 틀을 설계한 후 남북 통합 마스터플랜을 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북한 개발이나 DMZ를 손대는 것은 아무나 못합니다. 내가 하겠다고 하면 유엔에서도 인정해줄 겁니다. 이왕 공직을 맡았으니 책임지고 제대로 해보려 합니다."

■ He is …

△1943년 함경남도 안변 △1962년 경기고 △1966년 서울대 건축학과 △1969~1971년 서울대 응용과학연구소 연구교수 △1972년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설립 △1998~2000년 이탈리아 베니스건축대 도시설계학과 객원교수 △2000~2003년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객원교수 △2003~2004년 중국 칭화대 객원교수 △2002~2008년 명지대 건축대학 학장 △명지대 석좌교수·건축대학 명예학장

■ 김 위원장의 '창조적 아이디어'

무산된 용산개발 "지하 5층 도시 건설로 해결"

쇠퇴 신도시 "아파트 1층 헐어 서비스업 유치"

한샘 시화공장, 예술의전당,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등 당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다수 설계한 김석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건축뿐 아니라 특히 도시설계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쌓았다. 그가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거나 설계에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여의도를 비롯해 중국 취푸(曲阜) 신도시, 베이징 경제특구, 쿠웨이트 자하라 신도시, 예멘 아덴 신도시, 아제르바이잔 바쿠 신도시 등이 있다. 이 중 일부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무산되거나 중단됐지만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도시설계로 호평을 받았다.

그런 김 위원장에게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일각에서는 몽상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가 제안하는 프로젝트들의 실현 가능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국건위에서 추진하려는 중산간 도시 개발 역시 그런 프로젝트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중산간 도시와 함께 무산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해법도 제시했다. 지하도시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부지를 20~30m 깊이로 파서 지하 5층 규모의 도시를 건설하는 아이디어다. 주요 시설이 지하로 들어가기 때문에 교통영향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고 건설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광화문 네거리 등 시내 여러 곳에도 지하공간을 만들어 서로 연결시킬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이미 강남대로 지하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 같은 지하도시 조성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위원장은 "용산이 개발되면 도심·여의도와 경쟁해야 하는데 이들 지역은 이미 공실률이 높은 상태"라며 "용산 개발이 재개되려면 다국적 기업이 투자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날로 쇠퇴하고 있는 도시를 되살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보통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대도시 구도심뿐 아니라 지난 1990년대 초에 건설된 수도권 신도시 역시 10년 뒤면 본격적인 쇠퇴기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도시 쇠퇴는 지역 경제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김 위원장은 경고했다. 그러면서 리모델링과 서비스업 육성을 연계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아파트 1층을 헐어 출판업이나 소프트웨어개발업과 같은 소프트 인더스트리 업종의 사무실로 사용하도록 하고 대신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1층 입주자들을 이주시키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건위가 추진하려는 '행복한 부동산'과 '창조적 재건축'이 결합하는 방식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분당은 전용 180㎡가 넘는 대형 평형이 많은데 고령화와 1~2인 가구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너무 넓고 앞으로 세놓기도 힘들 것"이라며 "도시 내 주민들이 조직화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근래 들어 잔뜩 멋을 부린 건축물이 늘고 있는 추세에 대해 김 위원장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2~3배의 건축비를 더 들여 건물을 짓는 것은 형법으로 다스려야 할 만큼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건축가가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50년, 100년 뒤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며 "건축이 가장 중요한 경제행위인 만큼 건축가들이 좀 더 공공을 고려하고 건축주는 물론 시민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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