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8월 6일] 클린턴과 쌍용차, 불통의 대가

소통(疏通)과 불통(不通)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두 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경찰의 쌍용차 노조 진압작전. 전자는 뚜렷한 결실을 거뒀다.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들이 풀려나고 막혔던 북미 대화의 물꼬를 텄다. 소통의 힘은 이렇게 크다. 반면 후자는 불통의 상징격이다. 우리 사회에 누적된 불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얼마나 큰 후유증과 대가를 치러야 할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두려울 뿐이다. 링컨과 이명박의 리더십
아무리 어려워도 길은 있다. 나라가 위기에 봉착하면 전환점이나 영웅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1861년 봄, 남북전쟁이 터진 미국에서도 그랬다. 국민들이 강력한 지도력을 염원했을 때 한 정치인이 등장해 분열 직전인 북부의 여론을 추슬렀다. 주인공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아니라 그의 정적 스티븐 더글러스다. 남부를 지지기반으로 삼았던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링컨에게 패배했던 더글러스는 전쟁이 터지자 연쇄 지역유세를 통해 ‘과거는 묻어둔 채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자’며 ‘링컨과는 여전히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지만 민주당원들은 연방수호를 위해 애국적 의무를 다하라’고 연설했다. 혼신의 힘으로 유세에 나섰던 더글러스는 지친 탓인지 몇 개월 뒤 사망했지만 연방은 살아났다. 북부와 남부를 저울질하던 주들이 연방에 남고 남부나 캐나다로 떠나려던 민주당원들도 마음을 바꿨다. 민주당 성향이 강하던 군장교들도 남부군 대신 연방군을 택했다. 남부동맹의 확산을 막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더글러스는 링컨과는 악연으로 점철된 평생의 라이벌. 난국을 맞아 링컨은 정치권에서는 물론 젊은 시절 연적이기도 했던 그와 심야회동을 자처해 몸을 낮췄다. 결국 더글러스는 링컨을 도왔다. 소통을 통한 링컨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통으로 일관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바로 지금, 오늘날의 한국을 보면 답이 나온다. 한마디로 총체적 불통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미디어법을 야당대표가 단식이라는 배수진을 치며 제의한 여야 영수회담도 거부한 채 힘으로 통과시킨 후유증이 어떻게 증폭될지 모른다. 쌍용 자동차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노조의 투쟁이 정부의 주장대로 ‘법과 원칙’에 위배된다 할지라도 농성장에 전기와 식수 공급을 끊고 발암물질이 들었다는 최루액을 분사하며 강제 진입에 나선 행위는 전쟁과 다름 아니다.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빚어진 용산참사의 교훈은 안중에도 없다. 어느 문명국가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가 자국민을 상대로 이렇게 할 수 있는지 진정 궁금하다. 국민부담 강요하는 총체적 불통
불통은 정치행위로 끝나지 않고 국민에게 부담을 강요한다. 클린턴의 방북으로 조성된 북미 간 직접대화 분위기는 1994년부터 본격화한 1차 북핵 위기 당시와 비슷하다. YS정권의 대북강경책을 ‘지지’했던 미국이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선 후 한국은 얻은 것 하나 없이 대가만 치렀다. 생색도 못 내고 대북경수로 건설자금의 70%를 냈다. 클린턴의 특별기가 알래스카와 캄차가반도 상공을 거쳐 직접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점과 방북 정보를 우리 정부가 자세히 몰랐다는 보도는 이번에도 한국이 배제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클린턴 방북은 개인 차원’이라는 미국 백악관의 설명도 한국을 달래려는 수사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북한에 ‘퍼주기’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의 이해관계에 의해 강요되는 ‘털리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모든 게 불통 탓이다.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불통의 대가는 정치세력에 머물지 않고 국민 경제에 전가된다. 정치구조를 만들어준 국민들이 응당 짊어져야 할 대가라고 해도 국민경제가 감당해야 할 손실에 몸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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