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납품 비리를 뿌리뽑기 위한 고강도 처방이 나왔다. 7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다. 정부는 이번 사건의 근본원인으로 꼽히는 '원전 마피아'의 비리사슬 구조를 끊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원전 공기업 간부들의 협력회사 재취업 문호를 제한한 것이나 부품성능 인증과 관련, 국책기관이 민간의 평가를 다시 검증하는 더블체크 시스템 도입 같은 것들이 그런 장치들이다. 현재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모든 원전의 부품 시험인증서를 전수 조사하기로 한 것은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다. 방향을 제대로 정한 것 같다.
이번 대책이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만 정부의 상황인식과 실행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원전산업계의 뿌리깊은 폐쇄적 순혈구조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이번처럼 부품인증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어처구니없는 작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지난해 원전부품 비리가 발생했을 때 이번처럼 비리의 온상인 유착구조부터 메스를 들이댔어야 했지만 정권 말 어수선한 상황에서 곁가지뿐인 미봉책 마련에 그쳤다.
다만 제도적 대책만으로는 뿌리깊은 원전납품 비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다. 열 포졸이 한 도둑 막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재취업 제한이나 부품인증 절차 강화, 입찰제도 개선 같은 기계적 조치로는 오래된 비리구조를 근절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원전 전문가집단이 직업윤리와 소명의식을 회복하는 일이다. 물론 원전 마피아니 뭐니 해서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데 대한 억울한 심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전문가들이 더 많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음에도 원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렇다 할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원전 관련 업무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고도의 전문성과 높은 소명감이 요구된다. 국민 생명과 안위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프로의식으로 무장했다면 비리 자체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각계 원전 관련 종사자들은 이번 사건을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아 원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덕재무장운동을 벌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