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잠수함 성능개량 계획 등 군사기밀이 담긴 문건 수십건이 독일 업체에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기술을 유출한 주범이 국내 방산업체 대표라는 점과 군수 일감을 따내기 위해 스스로 군사기밀을 넘겼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통영함과 고속단정 납품 비리에 이어 군 관련 비리가 잇따르면서 방위산업에 대한 비리 척결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는 해군 잠수함 성능개선 사업내용 등이 담긴 군사Ⅲ급기밀을 빼돌려 독일 방산업체 C사에 유출한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로 방위산업체 L사 대표 박모(49)씨를 구속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군사Ⅲ급비밀은 누설될 경우 국가안보에 상당한 위험을 끼칠 것으로 명백히 인정되는 가치를 지닌 정보를 말한다.
이번에 유출된 문건에는 KSS-Ⅰ(장보고1함) 성능개량'과 '항만감시체계(HUSS)' 사업 관련 정보가 포함됐다. KSS-Ⅰ성능개량 사업 문건에는 사업 개요와 전력화 시기, 잠수함의 정보처리능력, 공격능력, 주변국의 최신 잠수함 전력 현황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박씨는 독일 업체가 기밀을 넘겨달라고 먼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군수용품 납품 계약을 따내기 위해 기밀 유출·누설을 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국내 방산업체에 근무하다가 올 3월 C사와 합작 설립한 L사 대표로 선임됐다. L사는 당시 KSS-1 잠수함 성능개량 사업의 주계약자가 되는 것을 추진하고 있었다. 박씨는 이를 위해 이미 KSS 관련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C사의 잠망경을 수입해 납품하기로 하고 C사의 마음을 사려고 우리 군의 군사기밀을 빼내기로 결심했다. 이런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방산업체 K사를 운영하며 군 관계자들과 친분이 깊었던 김모(51·구속기소) 이사에게 기밀 유출을 부탁했다. 김 이사도 C사의 국내 에이전트를 하고 싶어 했기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김씨는 약속대로 합동참모회의에 수록된 군사Ⅲ급비밀 수십건을 빼내 e메일 등으로 박씨에게 넘겼으며 박씨는 문건과 영문 번역본을 부하직원을 통해 독일 C사 본사 직원 2명에게 e메일로 보내준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박씨가 부탁한 건을 포함해 2008년부터 올해 6월까지 31개 방위력 개선사업 관련 군사기밀을 수집해 국내외 업체에 누설한 혐의로 올 7월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김씨가 L사를 비롯한 25개 업체에 군사기밀을 누설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앞서 김씨 등의 꾐에 빠져 군사기밀을 넘겨준 공군본부 박모(46) 중령과 방위사업청 조모(45) 소령 등 현역·예비역 영관급 장교 등 모두 7명을 재판에 넘겼다. 군 장교들은 군 기밀을 넘긴 대가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고 유흥주점 등에서 수시로 접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군은 이번 군사기밀 유출 건 외에도 '통영함·소해함 납품비리' '고속단정 납품비리' 등 수건의 비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통영함·고속단정 비리 모두 전·현직 영관급 군 간부들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방산 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해 엄단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어서 앞으로 검찰의 방산비리 수사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