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더블딥 오나] <中> 신용의 위기

[美경제 더블딥 오나]<中>신용의 위기 잇단 회계조작에 투자자 등돌려 뉴욕 월가에 '지난 9ㆍ11 테러가 외부 세력에 의한 폭발(explosion)이라면 엔론 사건은 월가 내부의 폭발(implosion)"이라는 말이 있다. 올들어 거의 매일 터져나오는 기업과 금융인의 화이트컬러 범죄가 금융시장에 치명적이라는 의미다. 엔론 사건 이후 증시는 속락, S&P500과 나스닥지수가 9ㆍ11 테러 직후의 저점에 임박했고 5년 만에 최저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의 기업 및 금융가 범죄가 90년대 10년간 호황의 결과로 대공황 이후 최대의 사기사건이라고 분석했다. 대공황 때 주가폭락으로 인한 패닉 극복과정에서 금융계의 황제 JP모건 가문의 주가조작 사건을 비롯, 대형 금융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증시가 장기 침체에 빠지며 경제가 가라앉았다. 현재의 미국경제도 '신용의 위기(confidence crisis)'로 인해 주가하락 →투자위축→소비둔화→경기회복 지연의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이어질 경우 올초 회복의 싹이 돋던 미국경제는 다시 꺾일 가능성이 크다. ◇ 부패한 월가 엔론에서 시작된 연속적인 화이트컬러의 범죄는 90년대 장기호황의 결과다. 10년 주가상승 과정에서 최고경영자(CEO)들은 엄청난 스톡옵션을 챙겼고 그 부를 불리기 위해 월가와 유착관계를 맺었다. 주가를 부풀리기 위해 회계를 조작하고 이를 앤더슨과 같은 회계회사가 도와줬다. 월가는 기업 상장(IPO)에서 돈을 벌기 위해 기업의 부정적 뉴스를 가급적 가리며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이 과정에서 돈을 번 사람은 CEO와 월가 사람들이었고 손해를 본 사람은 투자자였다. 이제 투자자들이 이들 범죄기업을 처벌하고 있다. 최근 회계문제가 발생한 회사의 주가하락률은 최고치 대비 ▦아델피아 99.75% ▦엔론 99.80% ▦글로벌크로싱 99.87% ▦K마트 91.02% ▦루슨트테크놀로지 93.39% ▦월드컴 96.60% 등이다. CEO의 비리 규모가 1억달러라면 주가하락으로 날아간 시가총액은 수십억, 수백억달러가 되도록 투자자들이 패닉적으로 시장을 가라앉히고 있다. ◇ 늦어지는 처방 그동안 화이트컬러 범죄를 방관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1일 "비즈니스 세계가 행동을 깨끗이 해야 한다"며 "투자자들도 자신의 재산을 보전하기 위해 신용을 회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만큼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대통령이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하비 피트 미 증권거래위(SEC) 위원장은 회계회사에 오래 근무한 연유로 규제강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최근 회계감사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았으나 민주당으로부터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핀잔을 받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서로 다른 개혁안을 놓고 팽팽히 대립하는 가운데 스톡옵션제, 사외이사 확대 등의 민감한 사안은 기업인들의 치열한 로비에 의해 지연되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인들도 주요 자금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다. 개혁이 늦어질 경우 미국경제는 세계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고 달러하락과 주가하락, 이에 따른 경기둔화의 악순환을 거듭할 것으로 우려된다. 뉴욕=김인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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