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정유의 대량해고 결정은 ‘이번에 노조에 관용을 베풀 경우 또 다시 파업에 따른 조업중단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경영진의 위기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그간 노조의 파업과 이에 따른 가동중단 위협에 회사가 끌려 다닌 결과 단위 생산량 대비 근무인력이나 인건비가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었다"며 "노조의 계속된 임금 인상 등 요구에 양보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번 파업이 발생해 강경대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또 다시 파업사태가 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임직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며 이를 위해서는 불법 파업은 자신들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사실을강력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 조치의 또 다른 이유는 파업 비동참 노조원과 파업노조원간의 알력을 줄여비동참 노조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3년전 같은 여수산단내 여천NCC가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고 불법파업 노조원모두를 업무에 복귀 시켜 파업 동참-비동참 노조원의 알력을 초래케해 결국 비동참노조원 일부가 조기 퇴직하는 등의 결과를 빚게 한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실제로 LG정유 일부 파업 불참자나 파업에 참가했다가 조기 복귀한 노조원 상당수가 강경 노조원과 같은 부서에서 근무를 기피하는 실정이며 이중 일부는 같이 근무하게 될 경우 퇴직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데 대해 회사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 공채 응시자 경쟁률이 294대 1로 다른 동종업체에 비해 크게 높은 사상최대를 기록한 데다 응시생들이 입사를 원하는 이유가 높은 급료와 복리시설과 함께 노조에 대한 일관성있는 대처를 꼽은 것도 이같은 결정을 촉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들이나 응시자들이 회사의 일관된 강경입장에 긍정적인만큼 섣부른 동정론으로 여천NCC와 같은 수위로 문제를 처리할 경우 오히려 기업 이미지를 실추 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와 함께 노조가 파업기간인 지난 8월 1일 조선대에서 故 김선일씨 참수 동영상을 패러디한 CEO 처형 퍼포먼스를 한데 대해 ‘그럴 수 있느냐'는 감정적인 측면도 없다고 볼 수 없다.
한 간부는 "아무리 파업중이지만 자신의 회사 대표를 그토록 모독한데 대해 대부분 임직원들이 부끄러움과 경악을 넘어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며 "이들과 함께 다시 근무해야 하느냐에 대한 회의론이 동정심을 누르게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집단해고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노조측에서 반발하겠지만 강경투쟁은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사측은 최근 출범한 노조 새 집행부가 총대의원 42명 가운데 34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 대의원대회를 갖고 압도적인 찬성(31명)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한 만큼 해고된 전 집행부 간부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더욱이 장기적으로는 전 집행부 간부들의 해고가 새 집행부에 오히려 운신의 폭을 늘려줘 빠른시일내 정상을 되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치유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측은 대외적으로 "해고자는 물론 노조나 일부 사회단체에서 강력 반발하고시위 등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떠한 사태에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것이 회사의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의지 표명은 그간 회사측의 일관된 대응과 상통하는 것이어서 의심의 여지는 없지만 노조나 시민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판단됐다면 다소 처벌 수위가 낮아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분석이다.
(여수=연합뉴스) 최은형 기자